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던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 논쟁이 재점화됐다. 선별지급과 보편지급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은 하루에도 수마디씩 더해져 논란의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누군가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확장적 재정정책의 일환으로 보편지급 타당성을, 누군가는 한정된 재원으로 피해 계층의 지원 효과를 두텁게 하기 위한 선별지급 타당성을 피력한다.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위기 속 역시 전례가 없던 정책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된다는 점은 혹시 모를 다음 재난을 대비하는 측면에서 그 초석을 다지는 의미라고도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들이 언젠가부터 ‘맞고 틀리고’식 ‘OX 퀴즈’처럼 흘러가고 있는 데 대한 아쉬움이 크다. 

특히 올 4월 실시되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내년 치러질 대선 등과 맞물려 언젠가부터 주권자인 국민들의 의사는 희미해진 정쟁의 소재가 된 것만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4∼5월 처음 실시된 1차 재난지원금은 전 국민이 대상인 보편지급 방식이, 이후 2·3차는 소상공인과 특수형태근로자 등 피해계층을 대상으로 한 선별지급 방식이 채택됐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지급 방식 결정이 어떠한 기준과 원칙에 기반한 것인지 명확하게 알 길이 없다. 그저 매순간 정치권의 셈법에 따라 결정을 달리하는 모양새다.

경제 정책에 무지한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은 반드시 어느 한쪽을 ‘정답’이라 정의할 수 없는, 우리가 처한 경제적 위기 환경에 따라 상호 보완적으로 결정돼야 할 과제로 보인다. 

재난이 초래한 소비불황 여파가 가중될 때는 보편지급을 통한 내수 방어를, 재난 방어를 위한 규제 등으로 인해 특정 업종이나 계층의 피해가 극대화된 경우라면 선별지급을 통한 구제가 우선이 될 수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어제는 적절해보였던 정책적 판단이 내일의 위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보편지급이냐 선별지급이냐 논쟁보다는 매순간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그 방식을 결정지을 수 있는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수립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위기의 본질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 진단 아래 시스템화된 정책적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면 새로운 재난 대응정책으로 부각한 재난지원금이 그 지급방식을 두고 소모적 논쟁의 중심에 서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재난지원금은 보편이냐 선별이냐, 그렇게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경제 상황에 맞춰 가장 적절한 방식을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렇다.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에는 반드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재난지원금이 지속가능한 정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선별·보편지급에 매몰된 논쟁을 벗어나 체계적인 결정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