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목로주점은 좁고 길게 만든 테이블이 있는 오늘날의 ‘바(bar)’와 같은 선술집을 말합니다. 목로주점을 떠올리면 왠지 경쾌하고 벅찬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이연실 씨가 부른 ‘목로주점’ 때문인 듯합니다. 

"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로 시작하는 노래는 친구와의 진한 우정이 드러나는 가사, ‘언제라도 그곳으로 찾아오라던, 이왕이면 더 큰 잔에 술을 따르고, 이왕이면 마주 앉아 마시자 그랬지"로 이어집니다. 

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오가는 술잔에 용기를 내고, 친구의 위로에 눈물을 떨구다가도 내일의 꿈을 이야기할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껄껄껄’ 웃음을 짓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서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엘 오르고, 그래 그렇게 사막엘 가자"라고 약속하며 헤어집니다.

이 목로주점은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희망이 보이고 생동감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에밀 졸라가 1877년 발표한 소설 「목로주점」은 희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지옥과도 같은 암흑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주인공 제르베즈는 죽도록 일만 하면서도 아버지에게 학대받던 엄마를 보며 자랍니다. 성인이 된 그녀는 처음으로 랑티에라는 남자를 사랑한 끝에 동거하며 아이 둘을 낳습니다. 그러나 외박을 일삼던 남편은 돈을 탈탈 털어 다른 여자와 함께 떠나버립니다. 그녀는 어린 자식들을 위해 세탁부로 취직해 열심히 살아갑니다.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쿠포라는 남자가 끈질기게 구애를 했고, 결국 결혼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세탁소를 갖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쿠포가 발을 다치는 바람에 모아둔 돈 모두를 치료비로 써버려 다시 빈털터리가 됩니다. 그러나 그녀를 흠모하던 구제라는 이웃집 청년이 자신의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선뜻 빌려줘서 세탁소를 차립니다. 

그런데 치료받는 동안 게으름뱅이가 돼버린 남편은 매일 술로 지새우더니 결국에는 가진 돈 모두를 술값으로 탕진해버릴 만큼 알코올 중독자가 됐습니다. 제정신이 아닌 그는 아들들까지 구박하자, 그녀는 아들을 구제에게 맡깁니다. 게다가 건강이 좋지 않은 시어머니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지만 그래도 그녀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어느 날, 첫 남편 랑치에가 돌아와 그녀의 집에 눌러앉아 세 사람의 추악한 동거가 시작됐고, 그녀의 딸마저 가출해버렸습니다. 이런 와중에 세탁소도 날리고, 쿠포도 알코올 중독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살려고 애쓴 제르베즈였지만, 그녀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상황은 그녀 스스로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이었을 겁니다. 

이연실 씨가 부른 목로주점 속 주인공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을 믿어주고 함께 꿈을 꿔주던 친구가 있어 버텨낼 수 있었지만, 제르베즈의 목로주점에서는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의 끈을 쥘 수 없던 그녀는 이제 마지막 남은 삶의 의미인 술 한 잔을 마신 뒤, 비참하고 슬픈 생을 마감합니다.

바람나 달아난 첫 남편, 알코올 중독이 된 두 번째 남편, 학대받는 아이들, 가출한 딸, 병든 시어머니까지 모셔야 하는 삶, 이 모든 것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겁니다.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기 전까지 그녀는 얼마나 간절히 살고 싶어 했을까요. 만약 그때 이연실 씨의 목로주점 속 친구와도 같은 사람이 그녀 곁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죽음만큼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 글을 쓰면서 잠시 눈을 감고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손을 선뜻 내민 적이 있는가?’ 그리고 알았습니다. 죽어가는 제르베즈를 보고도 애써 외면한 방관자가 바로 저였음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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