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복순 부천시여성단체협의회 회장
최복순 부천시여성단체협의회 회장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한 요양병원에서 155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 그중 27명이 사망했다. 

요양병원의 병원장은 "건물 한 층을 코호트 격리하고, 남겨진 의료진과 직원, 간병인이 환자치료부터 식사까지 준비했는데 역부족이었다. 중증환자 이송을 외부에 요청했으나 병상이 부족해 소용이 없었다. 이송만 빨랐어도 사망자의 80%를 살릴 수 있었다"라고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취약한 공공의료체계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이야기이다.

진주의료원 폐쇄, 메르스 사태 때에도 공공의료 확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으나 그동안 크게 개선된 점이 없었고,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이르러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최근 코로나19를 통해 많은 국민은 공공의료 필요성을 직접 체감했고 여러 지방자치단체는 공공병원 확충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도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정책에는 공공의료 확충 정책이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고 올해 정부 예산에 공공병원 확충 등 관련 예산이 전혀 편성되지 않았다. 다만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달 정부는 2025년까지 지역 공공병원을 20개 정도 확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은 2019년 기준 221개소로 전체 의료기관 대비 5.5%이고, 병상은 9.6%로 OECD 평균의 1/10 수준으로 아주 낮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지역별로 편중돼 전국의 생활권을 70개로 나눈 진료권 중 27개에는 300병상급 공공종합병원이 전무한 실정이다. 또한, 정부의 공공의료 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병원과 병상은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이다. 소방서, 경찰서 등과 같은 사회안전망인 공공병원에 대해 필요성과 당위성보다는 비용 편익에 근거한 경제성의 잣대로 바라보고 수십 년간 의료를 민간 중심으로 맡기고 운영하다 보니 코로나19를 맞이해 병상, 장비는 공급 과잉인데도 제대로 쓸 수 없고 인력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10%도 안 되는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치료의 80%를 떠맡았는데 지난달 코로나 3차 확산으로 하루 확진자가 1천 명이 발생해 병상 부족 사태에 상급병원은 전체 허가 병상 수의 최소 1%를 중증환자 전담 병상으로 확보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려 겨우 병상을 확보했다는 사실은 공공병원이 왜 필요한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공병원은 "의료의 질이 낮고 시설, 장비가 우수하지 않다. 공공병상 공급은 과잉상태로 민간의료기관과 중복이 된다"라는 일반 국민들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공공병원도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평소에는 일반 진료를 제공하지만 국가적 재난, 재해, 응급상황 발생 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공공병원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병원은 민간의료기관을 선도하는 역할을 한다. 표준진료와 민간병원이 기피하는 진료를 담당하므로 불필요한 비급여와 중복진료, 과잉진료를 지양해 진료량을 감소시켜 의료비를 절감하며, 지역 의료시장에서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고양시의 경우만 해도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국립암센터와 같은 공공병원이 있는데 이 지역에 있는 동국대 일산병원 등 3개 종합병원은 공공병원의 진료비, 의료 서비스 등을 의식하면서 경쟁하고 있다. 

아울러 공공병원 확충을 위해서는 비용 편익을 중심으로 시행하는 예비타당성 조사 완화 또는 면제로 장애 요인을 완화해야 하며, 지방자치단체 재정자립도에 따라 현재 기준보조율보다 높은 보조율 적용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최근 코로나 3차 유행이 정점에서 감소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변이 바이러스 등으로 인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4, 5차 유행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여야 하고, 앞으로 닥쳐올 수도 있는 다른 감염병과 응급상황 등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공공병상 확충 및 새로운 공공병원 설립, 공공의대 등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다"라는 명언이 있다. 바로 지금 공공의료 확충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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