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존경하는 왕을 선택하라면 단연 세종대왕이 압도적일 것이다. 바다 건너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영국인이 사랑하는 왕은 누가 있을까? 유명한 왕으로는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여왕을 꼽을 수 있다. 그에 반해 헨리 5세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즉위 기간도 9년으로 길지 않았던 헨리 5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성공적인 군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군사적으로 열세한 상황에서도 프랑스 군을 압도적으로 제압한 아쟁쿠르 전투의 승리가 유명하다. 공영방송 BBC가 2002년 여론조사로 선정한 위대한 영국인 100인 중 72위를 차지한 헨리 5세를 영화 ‘더 킹:헨리 5세’를 통해 보다 가깝게 알아보자.

열여섯 살 때부터 전장에서 활약한 용맹한 전사였지만 헨리는 전쟁보다는 평화를 소중히 여겼다. 그런 까닭에 전쟁을 일삼는 아버지와는 거리를 두고 성 밖에서 궁핍하지만 자유롭게 지내던 중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듣게 된다. 차기 왕으로 거론되던 동생마저 전투로 목숨을 잃는 바람에 헨리는 왕위에 오른다.

왕권 초기, 헨리는 선왕과는 다른 통치 스타일을 선보인다. 적국의 도발에도 불필요한 흥분을 자제하며 최대한 전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백년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프랑스와의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더 이상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자신의 신념과 대치되는 전쟁 속에서 헨리 5세는 강인하고 냉철한 인물로 변해 간다. 특히 수적으로 열세한 아쟁쿠르 전투에서 군사를 직접 이끌며 "우리는 전우고 형제다"라고 독려한 연설로 투지를 고취시켰다. 비 온 뒤 진창에서 싸워야 하는 전투에서는 무거운 갑옷을 벗고 기동력을 극대화한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패착이 짙었던 교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런 헨리 5세를 후세 역사학자는 "방향 없이 표류하던 허약한 나라를 맡아서 9년 뒤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만들어 놓고 떠났다"고 평가한다.

헨리 5세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주인공이 될 만큼 흥미로운 인물이다. 단지 훌륭한 전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삶과 철학이 다름에서 오는 괴리와 홀로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과정이 세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평화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던 왕은 결국 더욱 안정적인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피를 봐야 했다. 승리의 결과, 국민은 뜨거운 함성으로 대답해 줬지만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자행돼야 했던 무수한 폭력과 학살은 섬세하고 인간미 넘치던 청년의 모습을 지워 버렸다. 이제 모두가 범접할 수 있는 강력한 왕권을 거머쥔 국왕이 됐지만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헨리 5세의 외로운 사투에서 무엇을 위한 전쟁이고 승리였는지 영화는 다시 되묻고 있다.

영화 ‘더 킹:헨리 5세’는 용맹한 왕의 무용담이나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으로 무장한 작품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 청년이 군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외로움과 고뇌, 권력의 비정함에 방점을 찍고 전개된다. 두 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을 끌고 가는 헨리 5세 역의 티모시 샬라메의 매력과 열연도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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