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화 인천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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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철도원 삼대」 출간 기사를 보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주문해 놓고 읽기를 미루고만 있을 때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철도원 삼대」에 대한 황석영 초청강연회 소식이 왔다. 지난해 12월 13일이었다. 참가를 신청하고 책을 읽고 강연회에 참석해야겠기에 부지런히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날짜가 임박해서 코로나 사태 악화로 강연회가 취소됐다는 소식이 왔다. 그래 늑장을 부리다가 619쪽의 두툼한 책이긴 하지만 한 달 이상 걸려 이제 겨우 다 읽었다. 

소설을 읽어 가는데 처음부터 인천의 지명이 자꾸 나와 소설이 낯익게 다가왔다. 주인공의 고향이 강화도인 데다 소설 줄거리가 영등포, 인천을 주무대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강화도 선원면 출신의 이십만, 이백만, 이천만 3형제 중에 둘째 이백만의 아들 이일철(한쇠), 이이철(두쇠), 그리고 손자 이지산, 증손자 이진오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 100년간의 기록이다. 소설이지만 내겐 역사책으로 읽혔다. 소설 중간 중간에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읽었는데 큰 사건들은 실제 우리 역사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었다. 

황석영은 1989년 3월 20일 문익환 목사를 따라 방북해 1993년 4월 27일 귀국할 때까지 4년여 동안 북한에 머물렀다. 북에 있을 때 한 인물을 만났는데 평양백화점 부지배인으로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그가 서울말을 쓰는 것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는 영등포가 고향으로 해방 전 철도기관수로 대륙을 넘나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작가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1943년생인 황석영도 1947년 평양을 떠나 귀국해 영등포에서 자랐기 때문에 두 사람은 금세 의기투합해 대화를 나누던 중 당시 영등포에 있던 한 소학교의 화재 사건을 둘 다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짙은 동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 작가는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하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필 계획을 그만두기도 하고 미루기도 하며 지내다가 30여 년 만에 이제야 그 작업을 완성했다고 한다. 1946년 대구에서 일어난 10월 사건, 1947년부터 7년여 동안 지속된 제주 4·3사건, 1948년 10월 여수 순천에서 일어난 여순사건 등 역사적 사건들이 모두 일제강점기부터 내려오는 한반도의 이념 갈등에서 비롯됐음을 비교적 상세히 알게 됐다. 해방되자마자 북쪽에 소련군이 진주하고 남에서는 곧바로 미군정이 시작돼 독립운동 세력이 국정에 참여할 기회를 잃고 해방 이전 체제가 그대로 유지돼 친일파가 득세하는 과정이 소상하게 소개돼 있다. 

소설에서 일제에 빌붙어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을 탄압하던 악랄한 인물 최달영이 해방 후 미군정에 의해 용산경찰서장으로 승진해 여전히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대목이 나온다. 결국 독립운동 세력에 의해 비참하게 처단되긴 했지만, 해방 이후에도 자주 민주 경찰 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것 같아 착잡한 마음으로 잠시 읽기를 멈추고 생각에 잠기곤 했다. 한반도의 긴장 상태는 전혀 해소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2021년을 맞이했다. 하노이 북미회담 직전까지만 해도 일말의 기대를 했지만 다시 역사는 판문점 선언 이전으로 돌려진 느낌이다. 

미국이나 한국의 협상 당사자들이 곧 퇴장하게 될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면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이 진정 기미가 보이고 대한민국 대선이 끝나야 논의는 다시 시작되지 않겠는가. 바이든의 선택도 아직은 미지수다. 내년 도쿄올림픽도 변수다. 코로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올림픽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면 남북문제는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그 어떤 남북 이슈도 컨벤션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남북 철도 연결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평양을 지나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유럽대륙까지 달리는 열차 운행이 실현되기를 기대했었다. 다시 그 희망에 불씨가 당겨지기를 바란다. 통일의 문제만큼은 진보·보수 따로 없이 일관된 민족의 과제로 추진돼야 한다. 머지않아 화해 분위기가 조성돼 남북 강산에 희망의 봄이 다시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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