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기나긴 선거여정을 거치고도 선거 결과를 두고 첨예한 대립과 극심한 혼란의 모습마저 보였던 아슬아슬한 시간들을 지나 지난 21일 오전 2시(한국시간) 민주당 후보였던 조 바이든 당선자가 마침내 미국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의 취임사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우리는 민주주의가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배웠습니다. 민주주의는 부서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지금 민주주의는 승리했습니다(We’ve learned again that democracy is precious. Democracy is fragile. At this hour, my friends, democracy has prevailed.)"라는 구절이었다. 특히 민주주의가 ‘부서지기 쉽다(fragile)’는 표현에 공감한다.

"이만하면 굳건하게 민주주의를 완성했다"고 자만할지라도 어느 한순간에 유리잔처럼 깨질 수 있다는 점은 우리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더욱이 수준 높은 민주주의를 향유하던 홍콩시민들이 최근 중국 본토의 정치세력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심하게 억압받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주의는 언제든 ‘역행(逆行)할(reversible)’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태국의 방콕 형사법원이 왕실모독죄로 기소된 전직 공무원 60대 여성에게 징역 43년 6개월의 중형을 선고했다고 한다. 그녀는 2014~2015년 태국 군주제(君主制)를 비판하는 내용의 오디오 클립을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올린 혐의로 기소됐는데, 법원은 "그녀가 저지른 범법행위들은 태국 국민들이 숭배하는 군주제에 해를 끼쳤고, 충성스러운 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참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국가모독죄’로 탄압했던 일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요즘 태국의 민주시민들이 겪고 있는 고초에 대해 같은 병을 앓았던 사람으로서 상련(相憐)의 정을 느끼게 된다(참고로, 우리나라에서 국가모독죄는 1975년부터 형법 제104조의 2에 존재해 오다가 1987년 6·10 민주항쟁 이후 폐지 논의가 일어나 결국 1988년 12월에 폐지됐으며, 2015년에 헌법재판소에서 전원일치로 위헌 판정을 받았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야권운동가이자 푸틴 대통령의 ‘정적(政敵)’으로 불리는 나발니가 지난 17일 독일에서 귀국하자마자 체포된 데 대해 시민들이 그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강추위 속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나발니는 지난해 8월 러시아 정보기관이 벌인 것으로 의심되는 독극물 테러를 받고 독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왔다. 이 사건은 1973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김대중 납치 및 암살미수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튼 이처럼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피맺힌 절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이 예전처럼 민주주의의 성실한 ‘모범’이 돼주길 기대한다. 다행히 바이든 취임으로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사 중에 인상적인 대목이 또 있다. 

"미국은 시험대에 올랐었고 우리는 더 강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동맹을 회복하고 다시 한 번 세계와 협력할 것입니다. 어제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힘의 모범이 아니라 모범의 힘으로 이끌 것입니다(America has been tested and we‘ve come out stronger for it. We will repair our alliances and engage with the world once again. Not to meet yesterday’s challenges, but today‘s and tomorrow’s challenges. And we’ll lead, not merely by the example of our power, but by the power of our example)." 

특히 ‘힘의 모범(example of power)’이 아니라 ‘모범의 힘(power of example)’으로 리드하겠다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미국의 존재가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세계 곳곳의 시민들에게 힘과 격려, 희망의 횃불이 되길 빈다. 또한 바이든 재임기간 동안 북한 문제에 대해 ‘모범적인(exemplary)’ 외교적 해법을 실천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정착에 획기적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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