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갓난아기가 입을 떼기 시작하면 어른들은 무척 행복해합니다. 아기가 뭐라고 옹알거리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줍니다. 옹알이에 나름대로 해석을 하며 아기가 기특하다며 기뻐합니다. 이렇게 아기는 들어주는 사람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랍니다. 이게 자연의 이치이고 관계의 정석입니다. 경청이야말로 상대를 성장시키는 최고의 명약입니다. 

「지혜의 한 줄」(리민)에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여인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남자의 비밀을 알려주는 예화가 있습니다. 친구가 그 비밀을 묻자, 그는 아주 간단하다며 마음에 드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피부가 매우 아름다우시군요. 겨울철에도 이렇게 건강한 피부를 유지하시는 게 놀랍습니다. 어디 좋은 데 다녀오셨나요?"

"하와이요. 그곳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어요."

"하와이가 어땠는지 당신 생각을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물론이죠."

이렇게 말한 뒤 그가 친구에게 "오늘 아침 그녀가 전화를 걸어와 나를 한 번 더 만나고 싶다고 말하더군. 나랑 대화하면 즐겁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고 말이야. 하지만 나는 어제 그녀 얘기를 듣기만 했지 몇 마디 하지도 않았어."

그의 인기비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상대가 편히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또 그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는 겁니다. 즉, ‘당신 생각을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라는 한마디로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겁니다. 경청하는 태도는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후회하는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아서, 또는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아서 발생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뼈저린 후회’라는 소제목의 짧은 글이 「울지 말고 꽃을 보라」(정호승)에 나옵니다.

남편이 퇴근 전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닭튀김을 해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앞집 할머니가 벨을 눌렀습니다. 차나 한잔하겠다고 합니다. 귀찮았습니다. 늘 듣기 싫은 그녀의 아들이나 남편 얘기를 할 것이 뻔했습니다. 홀로 사는 할머니의 푸념을 듣기에는 지금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차갑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내일 하시죠. 제가 찾아뵐게요. 지금 막 아이들 주려고 닭튀김을 하는데 집안이 엉망이에요."

할머니는 돌아갔습니다. 가스 불을 켜놓은 상태라 황급히 문을 닫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자 어젯밤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누가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바로 그 할머니였습니다. 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마지막으로 벨을 눌렀던 할머니의 죽음을 알고 나서 고작 닭튀김 하는 것 때문에 안 된다고 거절한 그 부인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조금만 시간을 내면 될 것을 말입니다. 들어주는 것이 귀찮은 일일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절박한 일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무척 외로울 때는 더 그렇습니다. 특히 극단적인 결심을 했을 때는 자신의 그런 결심을 되돌리고 싶어서라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외면받았을 때는 삶의 끈을 쉽게 놓아버립니다. 죽은 사람은 죽어서 안타깝고, 남아 있는 사람은 뼈저린 후회를 하며 죄의식에 시달릴 겁니다. 이렇게 경청하지 못하는 태도는 화자나 청자 모두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요즘 자영업자들과 프리랜서들 그리고 방역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곳곳에서 들립니다. 정부에서도 이들을 도울 방책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그러나 이때 생각해볼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정책 결정에 앞서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분들의 소리를 먼저 경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갈급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 있겠지요. 그래야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음을 선택한 할머니를 보고 뼈저린 후회를 하는 아주머니의 전철을 밟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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