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해방 직후인 1947년 자서전인 「백범일지」를 통해 다른 나라의 침략과 약탈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문화라 했다. 행복한 삶 또한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언급했다. 나 역시 구정 전 영역에 걸쳐 행복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문화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고 있다. 동네 쓰레기를 치우고, 자욱한 미세먼지를 걷어내고, 냄새나는 하천을 복원시키고, 지역화폐로 경제를 살리고, 맞춤형 복지로 온기를 불어넣고, 스마트에코시티로 남다른 도시디자인을 입히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일상 속 문화충전이다. 

사실 우리 세대는 문화를 누리며 자란 세대가 아니다. 학교에서 음악과 미술을 접하긴 했지만 문화를 이해할 순 없었다. 한때 내가 꽤나 진지하게 꿈꿨던 가수 역시 문화인이 되겠단 생각보다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로서의 의미가 더 컸다. 먹고 살기 바빴기에 문화란 단어를 생각해 보기에도 어려운 시대였다.  그러던 중 1987년 공무원 임용 이듬해, 운 좋게 88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문화행사과에 근무하면서 문화에 대한 시각을 달리할 수 있었다. 

당시 내 담당업무는 전국의 성화봉송 코스별로 세계 10여 개국 예술단의 경축공연을 열며 올림픽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거였다. 그 중 핀란드 민속예술단과 함께 다니면서 많은 걸 느끼게 됐다. 대부분은 전문 예술인이 참가하는데 반해 핀란드 예술단은 별도의 직업을 가진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럼에도 순전히 예술단에 참여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함께한다는 이유만으로 먼 외국까지 와 공연을 선보일 만큼 매 순간 흥이 넘치고 표정엔 행복감이 가득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핀란드가 4년 연속 세계행복지수 1위를 달성하며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이유가 이거겠구나 싶다. 이후 선진국이라 불리는 곳에 가서 체득한 문화의 정의는 핀란드 예술단에게서 느낀 문화 충격과 흡사했다. 소소한 활동이 일상 속 문화로 뿌리 내려 팍팍한 삶의 윤활유가 돼주고 있었다. 사람을 잇고 지역을 잇고 나아가 사회를 잇는데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갈등을 화합으로 단절을 연결로 바꿔가는 중요한 열쇠는 다름 아닌 문화였다. 

내가 문화도시를 꿈꾸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문화는 우리 삶의 발자취이자 행복을 가름하는 기준이다. 문화로 얻은 긍정의 가치를 삶의 빈 바구니에 채우다 보면 자연스레 활력이 생기고 행복감이 커진다.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부터 문화와 친해져야 한다. 그 연결고리가 돼줄 문화충전소를 올해까지 100여 곳을 목표로 늘려가고 있다. 집 앞 15분 거리에 위치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도서관, 생활문화센터, 공유 부엌, 북 카페, 마을극장 등 공공&민간 문화공간 및 공동주택 유휴공간이 해당 거점이다. 

프로그램도 목공예와 민화 등 미술 분야를 비롯해 스마트폰 사진 촬영, 합창단, 인문학, 전통예절, 놀이치료까지 다채롭다. 대표적으로 문화충전소 1호점인 신현원창동 아파트 유휴공간의 경우, 동네 주민들에게는 도서관이자 댄스노래 프로그램과 심폐소생술 강의가 이뤄지는 곳인 동시에 청소년들에게는 오케스트라 연습장과 남녀 학생공부방으로 폭넓게 활용 중이다. 

문화의 힘은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며 행복을 느끼고 가치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한없이 깊어지고 넓어진다. 지난해 예비문화도시 선정에 이어 올해 법정문화도시 지정에 나서면서 기획부터 예산, 운영, 모니터링 등 모든 단계에 있어 주민과 함께 공동체형 문화 사업을 계획해 나가는 이유다.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잇고, 원도심과 신도시가 한데 어우러져 공동체를 회복하는 문화적 재생을 이뤄내고자 한다. 살맛 나고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 삶의 빈 바구니를 가치라는 열매로 채워줄 문화를 꽃피울 때다. 문화는 사치가 아닌 삶의 궁극적 가치임을 모두가 알았으면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