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주필
원현린 주필

"농부가 나에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알려주니, 장차 서쪽 논밭에 농사 지을 일이 생겨 났구나(農人告余以春及 將有事於西疇)." 널리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중국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대표작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는 한 문구다.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여섯 번째로 봄의 마지막 절기에 해당하는 곡우(穀雨)다. 농촌에서는 이날을 전후해 농사 짓기에 알맞은 비가 내려 농부들의 일손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갈수록 논밭이 사라져가고 있어 걱정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일부 직원들과 국회의원, 지방의원, 정부 고위층들의 토지에 대한 무한 소유 욕망이 시민들을 허탈감에 빠뜨리고 있다. 농사와는 거리가 먼 이들이 토지를 점하고 있으니 서민(庶民)들은 돌아갈 한 뼘의 땅조차 없다. 농사 지을 땅이 없는데 농부가 있을 리 없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과 경자유전(耕者有田)은 이제 듣기 좋은 한갓 미구(美句)에 지나지 않는다. 헌법 제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라고 명문화 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법체계상 최상위법인 헌법에 ‘경자유전의 원칙’을 천명하고있다. 이어 농지법 제3조에서 "①농지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국토 환경을 보전(保全)하는 데에 필요한 기반이며 농업과 국민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한정된 귀중한 자원이므로 소중히 보전되어야 하고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관리되어야 하며…. ②농지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ㆍ이용되어야 하며,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동법은 예외 규정도 있지만 제6조 ‘농지 소유 제한’ 항목에서 "농지는 자기의 농업 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라고 엄연히 아로새기고 있다. 법은 지켜져야 살아있는 법이다. 그렇지 않고 효력을 발하지 못하면 그 법은 사문화(死文化)된 법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이 농경사회는 아니지만 사람은 곡식을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상당량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농산물의 경우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식량 자급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됐다. 

곡물을 실어 나르던 화물 선박과 항공기가 바닷길과 하늘길이 모두 막혀 운항을 멈추기도 했다. 코로나가 장기화될 경우 각국은 식량을 무기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 백신 부족으로 나라마다 혼란에 빠졌다. ‘미국과 EU, 백신 싹쓸이’라는 외신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웃나라가 감염병으로 사망자가 속출해도 모두가 자국 우선주의다. 하물며 식량에 있어서랴. 

농사를 짓지 않는 비(非)농업인들의 농지 투기 근절이 시급하다. 중앙부처 고위공직자 5명 중 1명 꼴로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보도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우분투(Ubuntu) 정신’과는 거리가 먼, 오직 나 혼자만이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극단적 이기주의자들이다. 나는 이들을 "내 몸에서 터럭 하나를 뽑아서 세상을 이롭게 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논리로 ‘위아설(爲我說)’을 주창한 중국 사상가 ‘양주(楊朱)’를 신봉하는 무리들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지향하는 건전한 사회로의 길로 함께 가야 할 동반자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신분이다.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잘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 우리 모두가 잘 사는 것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전에 한번 ‘논밭은 이제 그만’이라는 제하에 "논과 밭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위기감을 느낀다. 훗날 아파트를 철거해 쌀보리를 생산해야 하느니 마느니 하고 호들갑을 떨기 전에 미리미리 대비하자. 우리들과 후손들이 먹을 양식을 위해 농지만큼은 보전해야 한다. 차라리 산을 깎아 집을 지을지언정 논과 밭만은 안된다"라고 역설했던 기억이 난다. 모든 생명체는 지수화풍 (地水火風)에서 나서 온전히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사람만이 땅을 소유하려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