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세상에서 무언가 급하게 성과를 내고자 욕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남다른 무엇인가가 두드러진다. 그것은 바로 조바심이란 한 단어로 압축된다. 조바심이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조마조마하여 마음을 졸임. 또는 그렇게 졸이는 마음’이라 정의돼 있다. 이는 ‘급할수록 돌아서 가라’는 가르침과는 그 품격이 다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인간의 욕망은 조바심 표출로 드러나고 이는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이기에 교육에서 가장 경계할 것이다. 

잠시 이재무 시인의 ‘땡감’이란 시를 살펴보자. "여름 땡볕/옳게 이기는 놈일수록/떫다/떫은 놈일수록/가을 햇살 푸짐한 날에/단맛 그득 품을 수 있다/떫은 놈일수록/벌레에 강하다/비바람 이길 수 있다/덜 떫은 놈일수록/홍시로 가지 못한다/아, 둘러보아도 둘러보아도/이 여름 땡볕 세월에/땡감처럼 단단한 놈들은 없다/떫은 놈들이 없다/" 이 시처럼 땡감은 한여름을 푸릇푸릇한 빛깔과 떫은맛으로 지낸다. 이는 아직 철들지 않고 거친 십대 청소년 시기와 흡사하다. 그러나 땡감이 없다면 홍시도 없듯이 땡감 시절을 거치지 않는 청소년들도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없다. 

"아이들의 성장을 기다려주십시오." 이는 교육학자들이 단골 메뉴로 주장하는 고언(苦言)이다. 발달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청소년은 전두엽이 왕성하게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다. 전두엽은 기억력, 사고력, 판단능력 등 아주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초등학교 아이 때는 어른들 말을 잘 듣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자기 주장이 강해지며 다소 불손한(?) 상태로 변하는 것은 바로 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전두엽 형성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이후 지속적으로 완성으로 향하는 지난한 과정이 진행된다. 

인생에서 사춘기를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청소년이 장차 성인이 됐을 때, 사춘기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할지 내면의 상처를 입고 생각조차 하기 싫은 시기로 기억할지는 부모와 교사 등 성인들의 몫이다. 그래서 부모와 교사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청소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이 수용성이야말로 교육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기다려주지 못하고 곳곳에서 학생과 부모, 그리고 교사 간 갈등이 일고 상호 신뢰를 상실한 채 각종 청소년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20년에만 5만2천 명이 넘는 학교 밖 청소년이 배출됐다. 

대한민국의 부모나 교사 공통점은 조바심에 근거한 청소년 양육이다. 이는 단시간에 성과를 도출하려는 욕심과 자기 자식, 자기 학생들이 모두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모습만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디고 성적이 안 나와도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 인지능력이 채 형성되기도 전에 각종 학원에 등록해 악기, 외국어, 수학, 웅변, 운동 등등으로 완벽한 인간을 만들려는 욕망은 때를 기다릴 줄 모르는 조급함의 극치다. 이는 마치 벼의 성장이 느린 것을 보고 어느 날 일부러 잡아 뽑아 줘 빨리 자라게 하려다 모두가 죽게 만든 옛 중국에서의 어느 농부에 관한 어리석은 일화와 무엇이 다른가?

청소년은 성장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고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높은 자존감 형성은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청소년은 그런 자존감을 토양으로 자신들의 잠재력을 언젠가는 활짝 꽃피우게 될 것이다. 어른들이 갖고 있는 성급한 기대와 욕심은 단지 허영심에 불과하다. 들판의 풀꽃도 자세히 봐야 예쁘고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 우리 교육은 어른들이 만든 일방적인 잣대와 조바심을 버리고 진득하게 기다려주는 마음으로 청소년을 따뜻하게 품어 안아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