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권력집단의 도덕적 우월감은 소통과 공감을 부정하고, 역지사지와 통합을 거부하며, 냉철한 이성을 마비시키는 정치적 독약이다. 이 왜곡되고 비정상적인 태도는 남의 잘못은 적폐지만 자신들의 과오는 실수거나 착오라고 주장하는데 추호의 망설임도 없게 만든다. 상대편을 향한 도덕적 우월감의 과시는 우리 사회가 온전하고 정상적인 도덕성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경계하고 타파해야 할 독선적인 행태이다. 권력에 의해 드러나는 도덕적 우월감은 종국에 도덕적 불감과 법치의 교란과 파괴가 만연한 국가를 만들기 십상이다. 과시는 자만심과 열등감에서 비롯돼 큰 착각으로 증폭되고 확대되며, 더 그럴듯한 가면과 눈속임으로 세상을 호도한다. 

 도덕적 우월주의자들은 과시의 대상이나 근거가 다소라도 있으면 또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대의 허물을 나올 때까지 캐고 파헤쳐 얻은 약점을 빌미로 자신들의 도덕성을 위장하고 과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과정에서 물론 상대 잘못을 꾸며내기도 하고 거짓말도 부지기수로 일삼는다. 검찰이 과거 정권의 부정이나 비리를 수사하면 정의로운 국민 검찰이고, 자신들의 범죄나 혐의를 수사하면 불의한 정치 검찰이라고 비난한다. 게다가 본인들의 부도덕성이나 비위가 불거지면 그 사태를 외면하거나 과거 탓으로 돌리고 대의를 들먹이거나 시대정신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앞세운다. 

 한편, 자신들이 내건 ‘다른 사람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고 나 스스로에게는 서릿발처럼 엄하게 대하라’는 뜻의 ‘춘풍추상’ 슬로건이 무색하게 남에게는 서릿발을 가혹하게 가하고 자신들에게는 봄바람을 자애롭게 적용하는 이중적 잣대를 드러낸다. 결국 이 정권이 행한 적폐 수사에서 100여 명이 넘는 전 정권 인사들이 사법 처리됐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4명이나 된다. 그러면서도 그 칼잡이가 대통령이 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막거나 뭉갠다.

 이들은 자기 신념에 매몰된 채 집단사고에 빠져 다양성과 중간지대를 거부하고 이분법적 논리로 세상을 판단하고 규정한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고 반대되는 관점을 통해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반대되는 관점을 제거함으로써 진실을 조장하고 확정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자신도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수십 년 전 민주화운동에 가담했다는 허울 좋은 자존심으로 단호히 거부한다. 자신들과 자신들의 지지자 외 모든 사람들은 잘못된 가치를 쫓을 뿐만 아니라 사실에 속거나 진실에 기만당하고 있으며, 따라서 누군가의 속임수에 넘어갔다고 믿는다. 

 수구 보수가 그렇고 태극기부대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초동에서 조국 무죄를 주장하면 정의고 양심이며, 광화문에서 정권 퇴진을 외치면 불법이고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 옥탑방 박원순의 낡은 구두와 재력가 김상조의 해진 가방을 비롯해 2017년 대법원장 지명을 받은 다음 날 춘천에서 개인 목적으로 대법원을 방문하는 데 서울까지 관용차를 거부하고 시외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했던 관사 재테크의 달인 대중교통 김명수의 행태에서도 도덕적 우월감의 잔영은 비켜가지 않는다. 이들 모습에서 노무현의 눈물이 보여 준 진심과 진정성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이 우연은 아닐 성싶다. 

 도덕적 우월주의자와 도덕적 위선자들은 적어도 한국 정치판에서는 동전의 양면이다. 한쪽이 교만이나 착각에 빠져 있다면 다른 쪽은 권력욕이나 재물욕에 집착하고 있다. 그동안 적폐청산은 정권의 이익을 도모하는 선택적 조치였을 뿐 이 정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불리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국민의 이익과 국가 미래를 위해 추진한 적폐 척결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는 정치적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들의 의식 속에는 우리 판단에는 절대로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무오류에 대한 확신이나 그러한 확신에 대한 착각이 자리하고 있다. 

 편향성을 객관성으로, 이중성을 합리성과 도덕적 환상으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신과 맞섰던 운동권과 도덕성의 질과 수준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현재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무능하고 위선적인 586 정치집단을 솎아내는 것만이 한국 정치가 그나마 정상화되고 대한민국이 사는 길이다. 20대에 실낱같은 희망을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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