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주필
원현린 주필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마양저(司馬穰저)는 진(晉)과 연(燕)나라와의 전쟁 중에 병사들의 막사와 우물, 아궁이, 먹거리를 비롯해 병이 든 병사가 있으면 찾아 문병을 하고 약도 챙겨 주는 등 장군의 신분으로 몸소 보살폈다. 게다가 장군에게 지급되는 재물과 양식을 모두 병사들에게 풀고, 자신은 병사들 중에서도 몸이 가장 허약한 병사의 몫과 똑같이  양식을 나눴다. 

이로부터 사흘 뒤에 병사들을 다시 순시하자 병든 병사들까지도 모두 앞다투어 싸움터로 나갔다. 진나라 군사들은 이 소문을 듣고 물러가고, 연나라 군사들도 이 소문을 듣고 황하를 건너 흩어졌다. 양저는 즉시 그들을 뒤쫓아 잃었던 땅을 되찾고 병사들을 거느리고 돌아왔다.

오기(吳起)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병사 다루는 일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노(魯)나라 군주를 섬겼으나 후에 위(魏)나라 문후(文侯)에게 발탁돼 장수가 됐다. 오기는 장수가 되자 신분이 가장 낮은 병사들과 똑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잠을 잘 때도 자신의 자리를 깔지 못하게 하고 행군할 때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식량은 직접 갖고 다니는 등 병사들과 함께 고통을 나눴다. 한번은 종기[疽]가 난 병사가 있는데 오기가 그 병사를 위해 고름을 빨아 치료해 주기까지 했다[연저지인(口允疽之仁)].

문후는 오기가 병사를 다루는 일에 뛰어날 뿐 아니라 청렴하고 공정해 병사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서하(西河) 태수로 삼아 진(秦)나라와 한(韓)나라에 대항하도록 했다. 장수가 병사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는 모습을 본 병사들이 감명을 받았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겠다. 

대륙에서 군웅(群雄)이 할거(割據)하던 춘추전국시대 패자(覇者)들은 어떻게 병사를 이끌었기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궁금도 하고 작금에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우리 군(軍)의 부실급식 문제와 군내 성 범죄 사건을 접하면서 하도 기가 막혀 2천여 년 전 한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다시 들춰 봤다. 사가(史家)는 양저가 병사들과 고락을 함께하는 용병술과 함께 오기의 연저지인 이야기를 열전(列傳)에 기록하고 있었다.

과연 오늘날 우리 군에 양저처럼 자신의 재물과 양식을 부하들에게 나눠주는 장군이 있는가? 오기처럼 병사들의 고충을 챙겨주는 장군이 있는가? 대한민국 국군(國軍)의 기강(紀綱)이 엉망으로 무너졌다. 군기(軍紀)가 서지 않은 군대는 전투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군인의 본분을 상실한 일부 지각 없는 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비행으로 군 전체의 명예가 크게 손상됐다. 군이 거듭나기 전에는 우리는 국군을 호국간성(護國干城)이라 부를 수 없다. 

병사들의 부실급식 실태가 드러나자 다 늦게 이제와서 ‘급식개선 범정부 TF’를 출범시킨다느니,  1인당 2천∼3천 원 하던 급식비를 1만 원선으로 상향 조정한다느니 하고 야단법석을 떠는 것이 우리 군이다. 

하지만 군이 조직적으로 민첩하게 움직이는 때도 있기는 하다. 그것은 요즘 온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군내 성추행 사건 등 비리를 덮을 때다. 신속한 은폐, 조작, 회유, 협박 등이 그것이다. 이런 군이 어떻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라는 군가를 소리 높여 부를 수 있을까. 

싸움은 병사가 하고 명성은 장군이 얻는다. 병사들을 소중이 여기지 않는 장수가 어떻게 나라를 지킨다고 할 수  있는가.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국가를 칭하는 ‘30-50 클럽’ 국가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다. 거기에 국제연합군의 일원으로 세계평화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이러한 나라의 국가에서 병사들의 식량이 부실하다니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군의 장성(將星)들이 실전(實戰) 경험이 없는 땅의 별들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정도라면 정말 곤란하다. 군기가 서려 있는 군대는 깃발마저 정연히 나부낀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장수, 그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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