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송 국제PEN한국지부 인천지역 부회장
신미송 국제PEN한국지부 인천지역 부회장

아재의 부고를 들었다. 장례를 치른 지 달포가 지나서다. 생전 파란만장했던 아재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갔다. 용케 임종 소식을 접한 종친 어르신 두 분이 아재의 옛 집터를 지키고 있는 감나무 밑에다 수목장을 지냈다고 한다. 북망산천 가는 길이 외로울 아재를 위해 누추하지 않게 한 상 차려서 먹여 보냈다고도 한다. 밥상 앞에서 염치 없었던 아재다. 저승길에서도 사잣밥을 허겁지겁 먹어치워 밥상을 뺏긴 저승사자가 아재 가는 길에 심통이라도 부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그릇 그릇 푸짐하게 담아 올렸다 한다. 

아재를 대면한 날이 생생하다. 맛난 음식을 영접하면 위에서부터 항문까지 소화기관들이 광란의 삼바 스텝을 밟아 재낀다고 했다. 이 좋은 음식을 보고도 통 먹을 수가 없으니 어찌 서럽지 않겠나, 하소연을 했다. 그랬던 아재는 고봉밥을 먹고도 권하는 밥을 못이기는 척 받았다. 첫 술을 뜬 것처럼 게눈 감춘 듯이 반찬과 밥그릇을 비웠다. 소다 한 숟가락을 입에 털어 넣고 밥그릇에 따른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것으로 아재의 식사가 마무리됐다. 

아재와의 촌수가 어떻게 되는지 정확하게 아는 이가 드물었다. 돌아가신 큰집 할아버지가 방계혈족으로 뻗친 촌수를 설명한 적이 있기는 했다. 길고 가늘게 연결된 실핏줄 저 어디쯤에 아재가 있었다. 아재의 발길은 자유분방했고 뜸해서 잊어버릴 만하면, 잘 기시지요? 하면서 대문을 두드렸다. 늘 노할머니 건강이 어떠신지 마음이 쓰여 문안 인사를 왔다고 했다. 어릴 적엔 인사성 밝고 똘똘한 아이였다며 할머니는 측은지심으로 아재를 다독였다. 

아재가 살았던 집은 집성촌 동네에서 오리는 떨어진 공동묘지로 가는 길목 근처 외딴집이었다. 젊어서 집 나간 아재는 사람들 기억에서 잊혔고 부모 돌아가신 지 오래라 허물어진 집터는 잡초만 무성해 폐가가 됐다고 한다. 할머니 생전에 발걸음을 시작한 아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도 근근이 인사를 왔다. 아재는 신용불량자라 금융거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 명의의 카드도 통장도 만들 수 없다며 보는 앞에서 돈을 요구했다. 

재기를 위한 발판으로 쓰기에는 소소한 액수였고 넙죽 받아가는 손에 쥐어주기에는 부담이 가는 금액이었다. 은혜를 갚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아재의 말을 누구도 신용하지 않았다. 아재는 언변이 좋았다. 알 만한 정치가의 이름을 친근하게 불렀고 문화예술계 인사와도 각별한 사이라며 그들과 함께한 일화를 입에 올렸다. 마음에 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다 회심병이 생겨 조선민국 대한천지를 떠돌아다닌다고도 했다. 

아재의 언어는 독특했다. 가열한 보폭이 다양해 인맥과 엮인 세상사가 뉴런처럼 뻗어나가는 아재의 말은 털어놓을수록 미스터리 인물이 됐다. 

아재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세월을 놓아버렸고 그나마도 아재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람들은 자기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 하는 경로당 어르신이 됐다. 당연한 수순으로 아재가 살았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예전만 못하고 아재의 왕성한 식욕을 채워주던 손들도 기력이 쇠해져 아재를 환영하지 않게 됐다. 

몇 년 보이지 않으면 콩밥을 먹고 있다는 소문이 풍문으로 들렸다. 아재를 둘러싼 소문은 찐진심이 되지 못하고 환영받지 못하는 담배 연기처럼 흩어졌다. 집안에 웃어른이 계셨던 그때는 가뭇없이 먼 친척이라 해도 반갑게 맞이했었다.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을 소환하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 뻔하다. 나는 그 시절에 한 발을 걸쳤던지라 아재의 뒤늦은 부고가 마음에 걸렸다. 

혀에 침이 묻어 있어야 맛을 알 수 있고 콧속에 물기가 있어야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처럼 한 발을 걸쳤던 나이테는 세월에 박제가 되지 않았다. 내 몸 속 5 L쯤의 피에 아재의 피가 몇 방울이나 섞여있는지 분석하고 싶지 않다. 

할머니 문안 인사를 핑계로 들락거렸던 아재를 위해 성의를 더한 밥상을 차렸고 한 끼를 나눠 먹었다. 한때 즐겨봤던 TV 예능프로그램 ‘한 끼 줍쇼’에서 한 끼 식사를 같이하면 식구가 된다고 했다. 아재와 함께한 한 끼는 열 손가락을 여러 번 접어야 할 만큼 꽤 많았다. 아재가 새로 터 잡은 세상에서는 부디 롤러코스터 탑승이 아닌 고른 숨 쉬는 생이 되기를 바라며 아재와 작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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