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가 있다. 바로 ‘탕핑’이다. 누울 당(躺)에 평평할 평(平), 즉 바닥에 등을 깔고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 최소한의 생계비로 삶을 살아가는 생활방식을 지칭한다. 중국은 최근 성장 둔화로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고, 직업이 있다 해도 대도시에서 내 집 마련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탕핑족은 일하지도, 집을 소유하지도 않으며, 결혼과 양육의 책임에서도 벗어나 생존만 유지하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이름만 다를 뿐, 우리나라에도 N포세대라는 용어가 있다. 연애, 결혼, 출산, 취업, 내 집 마련 등을 모두 포기한 세대를 말한다. 아등바등 일해도, 혹은 일조차 할 수 없어 꿈도 희망도 없이 모든 걸 포기하는 세대. 우리보다 앞서 일본에서는 이런 현상을 ‘사토리세대’라 칭했다. 사토리란 ‘깨달음’을 뜻한다. 마치 모든 것을 깨달은 수도승처럼 현실의 욕망을 끊어낸 청년들을 말한다. 탕핑족, N포세대, 사토리세대 모두 저성장과 사회양극화가 빚어낸 씁쓸한 그늘이다. 

 오늘 소개하는 일본 영화 ‘100엔의 사랑’은 의욕을 상실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한 여성의 변화의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전문대를 졸업한 서른두 살 이치코는 10년째 백수다. 도시락을 판매하는 부모에게 얹혀 밤낮 없이 게임을 하거나 만화를 보며 지낸다. 그날이 그날인 무탈한 하루를 살아가던 이치코의 삶에 어느 날 복병이 나타난다. 일주일 전부터 어머니의 일을 돕는 여동생은 언니가 한심하기만 하고, 급기야 자매는 온갖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머리채를 붙잡고 난투극을 벌인다. 결국 홧김에 독립을 선언한 이치코. 방값은 그나마도 어머니가 마련해 주셨지만 생계비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난생처음으로 일을 시작한 이치코는 야간 편의점 알바를 하며 고단하게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매일 바나나만 사서 바나나맨이라 불리는 손님이 불쑥 내민 복싱 경기 티켓은 이후 이치코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다. 사각의 링 위에서 서로 거칠게 싸우지만 경기 종료 후 넘어진 선수를 일으키고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모습에 이치코는 매료된다. 서른둘, 프로 복서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에 이를 악물고 체력을 단련한다. 무서운 투지로 프로 복서 데뷔전을 치르는 날 그녀는 제대로 된 한 방을 날려 보지도 못한 채 경기를 마친다. 그러나 경기 결과보다 값진 것은 이치코에게 "일어서"를 외치는 주변 지인들의 응원과 하염없이 맞고 쓰러져도 결국엔 일어서서 도전했던 스스로의 행동, 그 자체에 있었다. 

 사토리세대를 대변하는 이치코의 과거 10년은 알 수 없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세상은 언제나 한결같이 불공평하고 누구에게나 불친절하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결과를 내는 사람은 언제나 극소수다. 그러나 결과를 예단할 수 있다는 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경기에서 졌지만 싸워 봤기에 질 수 있었던 거다. 사각의 링 위에서 대결을 펼쳐 봤기에 어깨를 두드리며 "수고했어"라는 인사를 건넬 수 있었던 거다. 끝은 시작을 해야 볼 수 있고, 실패 후 흘리는 뜨거운 눈물도 도전해야 맛볼 수 있다. 패배의 결과는 아프지만 수고를 알아준 다독임에 위안을 얻어 우리는 다시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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