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법학박사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법학박사

"신분에서 계약으로(from status to contract)"라는 말은 영국의 법학자인 헨리 메인(Sir Henry James Sumner Maine·1822~1888)이 그의 저서 「고대법(Ancient Law)」에서 사용한 표현으로, 중세적 신분질서사회에서 근대적 계약질서사회로 역사 발전이 이뤄진 것을 매우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원래 유럽 중세의 경제는 장원(莊園)을 기초로 한 자급자족의 봉건경제체제였다. 그런데 도시와 상공업의 발달로 인해 자급자족의 장원경제가 붕괴되고 화폐경제가 확립되면서 지대(地代)를 부역(夫役) 대신 금전으로 납부하게 됐다. 이는 곧 농민이 농노(農奴)로서 농토에 묶인 신분적 예속관계에서 벗어나 자영농(自營農)으로서 농지를 대여받는 계약적 경제관계로 변화됨을 뜻하는 것이며, 이를 단초로 봉건적 경제체제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중세절대국가의 몰락과 근대시민국가의 형성을 초래했다. 그리하여 근대 시민법은 봉건적·신분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각자의 평등한 자유인격을 최대한으로 보장하고 개인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하게 됐고, 이를 토대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고도로 번성하게 됐다.

 이러한 과정을 되돌아보면 "역사란 자유의 확대 과정"이라고 설파한 독일의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1831)의 탁월한 통찰에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자유의 확대 과정은 순탄하지 않으며, 때때로 난관과 역행에 부딪히기도 한다. 최근 홍콩에서는 2020년 7월 보안법이 시행된 이후 시민들의 자유가 광범위하게 억압되고 있고, 미얀마에서는 올 2월 1일 발생한 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해 1천여 명의 시민들이 살해되는 끔찍한 상황을 맞고 있다.

 4월 28일(현지시간)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앞두고 언론인들과의 대화 과정에서 "21세기에서도 민주주의가 성공할 수 있을지 도전을 맞고 있다"며 "민주주의가 기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발언인데, 바이든은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과 오랫동안 토론한 결과 "시 주석은 민주주의가 중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어떤 일을 추진할 때 합의 형성에 꽤 시간이 걸리는 반면 중국은 독재정치로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여겨진다. 

 바이든은 미·중 경쟁을 ‘민주주의와 독재’, ‘인권과 반인권’의 투쟁으로 인식하는 발언을 거듭했다. 미·중 경쟁구도가 격화되면 세계 정세가 흔들리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민주주의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아무튼 오늘날 민주주의는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군사력·경제력을 앞세운 외부로부터의 도전도 있지만 내부로부터의 도전도 있다. 특히 오늘날 유튜브,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의 발전은 표현의 자유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정적 영향도 미치는 양날의 검으로 기능한다. 가짜 뉴스(fake news)의 무분별한 확산, 정치·종교·인종·젠더 등에 대한 극단주의자들의 선동·선전 등은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해악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민주주의가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행복을 추구하는 데 유용한 이데올로기로서 존속하려면 이를 잘 지키고 가꿔 나가려는 사회구성원들의 강한 의지와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편견과 감정적 언사가 배제되고 합리적 이성이 지배하도록 지성인과 사회지도층이 앞장서 계도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훼손하려는 여러 도전들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제도적 보장으로서의 ‘방어적 민주주의(Defensive Democracy)’의 이론과 기제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공평(평등)한 자유’의 실현을 위한 자유 확대의 역사는 흔들림 없이 지속돼야 한다. 

 76년 전 8월 15일 ‘해방’으로 이 땅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맞이한 우리 국민이 올해 광복절을 지나보내며 이런 생각을 다짐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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