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정 검단탑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문순정 검단탑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비극(悲劇)이지만 비극(肥劇)이다. 굳이 코로나19가 아니어도 비만의 유병률은 과거 50년간 세계적인 증가 추세를 보였다. 

과거 학생 검진 후 이상 소견으로 병원을 내원했던 환자들의 많은 수는 혈뇨 등 소변검사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만도 간혹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대학병원 은사님께 여쭤 봐도 대답은 같았다. "요즘 진짜 많아." 혈액검사 후 고지혈증, 지방간, 고혈압, 공복혈당능장애가 보이노라고 환아와 보호자에게 이야기해 주고 식이조절과 운동을 해야 한다고 설명하기 시작했을 때 환자의 어머니가 나에게 되묻는다.

무엇이 비만의 비상(飛上)을 가능하게 했을까? 비만 학자들은 ‘살찌우는 환경’을 제시했다. 팬데믹으로 많은 학교가 문을 닫았고, 학생들은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등교시간이 없어지니 수면 패턴이 무너지면서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느즈막이 일어나 공복으로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 슬슬 배가 고파지면 간편식을 선호한다. 공부를 끝내고 보내는 여가시간도 심폐운동보다는 스마트폰 손가락 운동이다. 평소 운동량이 없던 학생들도 그나마 등·하굣길 걷기운동을 했었는데, 이제는 학교에서 나오라는 날만 겨우겨우 한다. 이런 생활양식이 익숙해지니 학생들은 오히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면서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좁은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 잡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부모가 자녀의 식사에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됐다는 긍정적인 연구 사례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이 전례 없는 대규모 방역과 격리, 학교 폐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지루함, 답답함, 불안, 우울 등의 심리적 긴장이 늘어나고 있다. WHO에서는 작금의 위기상황이 가정폭력, 소아학대를 증가시키고 있다고 발표했다. 

마음의 병을 건설적인 방법으로 풀어내면 좋겠지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선택지 중 접근성이 가장 좋은 것은 음식 섭취일 것이다. 실제로 학대나 가정 내 폭력은 비만과 섭식장애를 증가시킨다는 보고가 있다. 비만의 해법은 식이 조절과 운동이다. 경우에 따라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 있기에 구체적인 부분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등 전문가와 상담하면 되겠다. 

또 다른 문제는 여러 가지 현상과 원인이 뒤얽혀 있는 이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 낼 수 있는가인데 범정부적인 참여, 사회와 기업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정의 범주에서 실마리를 찾고 싶다. 

나는 비만 진료를 할 때 반드시 ‘가족 치료’에 대해 언급한다. 몸을 잘 관리하고 좋은 습관을 들인다는 것에 의의가 있음을 생각해 보면 가족의 협조는 절대적이다. 누구라도 먼저 밖에 나갈 때는 동네 한 바퀴 함께 걷고 오자고 권해 주자. 주말에는 다같이 시간을 내어 자전거 여행을 떠나거나 누가 많이 하고 잘 버티는지 부자, 모녀 간에 홈트 경쟁을 해도 좋을 일이다. 무리가 되지 않는 범위라면 어떤 노력이든 환영이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에게 대안이 돼 줄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어떤 한 지역이나 한 세대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내가 풀어낸 이야기가 자신의 상황과 맞지 않아 거리낌으로 다가오는 개인도 있겠지만,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에서의 연구자료들을 토대로 작성한 것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원하기는 향후 가까운 미래에, 코로나19의 비극을 잘 이겨 낸 건강한 다음 세대들이 이 땅 가운데 굳건히 서 있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검단탑병원 소아청소년과 문순정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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