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도 아닌데 인터뷰를 하자고 하니 쑥스럽네." 사람 좋은 눈웃음이 인상적인 현대블루핸즈 송도종합서비스의 대표이자 미추홀구의원인 김익선 대표는 자신의 삶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인물이다. 인생을 살며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쉽게 포기하는 법은 없었다. 18화 나눔스토리 주인공은 그야말로 저력 있는 인물이었다.

 김 대표는 경북 봉화의 가난한 집안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 3학년 때부터 가장 노릇을 했던 그는 커서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사우디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근무 이틀째 오른쪽 발가락 전체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급히 귀국해 이식수술을 받고 1년간 회복에 전념했지만 살아갈 길이 참 막막했다. 발을 다쳐 직장생활도 힘들고, 수중의 돈은 10원도 없었다. "무얼 하며 살까 고민을 많이 하다 결정한 게 옥수수 뻥튀기 장사였어요." 28살에 시작한 그의 생애 첫 사업이었다.

 장사 수익은 나쁘지 않았다. 사람 좋은 얼굴로 다가가니 손님이 줄을 섰었다. 그러던 중 후배가 이삿짐센터를 같이 해 보자고 제안했다. 뻥튀기 일로 번 돈으로 화물차 한 대를 샀다. 그것이 그의 두 번째 업종이었다. "외갓집 형님이 강원도 탄광에서 탄 나르는 일을 도와 달라고 하셨죠. 중장비 운전이 가능했으니까 저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던 동생에게 화물차를 넘겨주고 강원도로 갔어요." 어려운 사람의 손길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의 성품이 드러났다. 

 이후 그는 한 후배의 도움으로 서울 전통시장에서 채소가게를 시작했다. 장사가 잘 돼 4개월 만에 전세방도 얻고 화물차도 한 대 살 수 있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열심히 해 왔지만 아이 양육과 병행하기는 힘들어 채소 장사를 접게 됐다. 결국 화물차로 화물일을 시작했다. "하루에 5만 원을 벌지 못하면 집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주변 깡시장에서 밤을 지새우고 벌 때까지 노력했죠." 한 번 세운 목표는 끝을 보는 그의 성격이 드러났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김포에서 장비 부속가게를 시작하게 됐다. 그 일이 계기가 돼 현재까지 자동차 정비일을 하고 있다. 

 의정활동에서도 그는 ‘해결사’로 명성이 자자한데, 민원을 신속하게 마무리 짓기 때문이다. "되고 안 되고를 확실하게 말씀드려요. 제일 싫은 게 남 속이고 거짓말하고 말 돌리는 겁니다." 솔직함과 투명성이 곧 신뢰의 비결이라는 생각이다. "‘약속만은 지킨다’가 제 선거 플래카드 문구였어요. 자신 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죠."

 어려운 시절이 있었기에 돕고 나누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적십자 희망나눔 사업장에도 가입하고, 인천교통장애인협회 후원회장도 맡았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고(故) 정주영 회장의 좌우명이 떠올랐다. 흔히 실패를 단정 짓고 쉽게 포기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실패를 시련으로 치환하면 성공 또는 행복이 훨씬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 적십자 나눔에 함께 하시는 분들 

㈜한빛산업 20만 원, ㈜어니스트리테일 20만 원, 한국가스기술공영㈜ 20만 원, 진성산업개발㈜ 20만 원, 성남계육 5만 원, 수성당약국 5만 원, 오부부치과 5만 원, 선우이비인후과의원 10만 원, 신태양옵티마약국 10만 원, 보화당한의원 10만 원, 조연실 5만 원, 이영관 3만 원, 권예원 3만 원, 변기환 3만 원, 이성자 3만 원, 김선유 3만 원, 김미정 3만 원, 오세경 3만 원, 이은숙 3만 원, 변혁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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