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 8월 말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법관 임용에 필요한 최소 법조 경력기간을 ‘5년 이상’으로 단축하되, 고등법원 및 특허법원 법관의 경우 ‘10년 이상’의 법조경력을 가진 법관을 보직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현행법상의 경력기준은 올해까지는 5년이고, 내년부터는 7년 이상, 2026년부터는 10년 이상인데, 법관 수급이 어렵다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경력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됐던 것이다. 

대법원은 경력기준을 높일 경우 로펌·경찰 등에서 자리잡은 우수 인력이 법관 지원에 소극적일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어려운 법관 부족 문제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대형 로펌 등에서 오랫동안 재직하다 법관이 될 경우 종전 근무처와 유착하는 ‘후관예우’가 우려된다는 문제점도 제기한다.

대법원은 개정안이 "법조일원화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법조일원화를 현실에 맞게 정착시키기 위한 제도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원의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다양성을 강화하려는 법조일원화의 취지가 퇴색할 것이란 이유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에서 반대 의견을 적극 제시했다. 판사 출신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도 "대형 로펌 출신자들과 원 내부 승진자들의 독식 현상이 심해지고, 전관예우와 후관예우가 더 심해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생각건대, 법관 수급상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법조경력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지만, 전폭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법관이 되려는 자에게는 뛰어난 법률지식뿐만 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경험’도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관은 법률지식 외에 쟁점이 된 사안을 충분히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종합적 사고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종합적 사고능력은 단순히 ‘공부에 의한 학습’으로 길러지는 것은 아니고 ‘경험을 통한 학습’으로 길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재판’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책을 맡는 법관은 상당한 정도의 세상살이 경험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양심’은 법관의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신념·소신이 아니라 법관이 인식하는 객관적·보편적인 가치관과 ‘사회적 통념(社會的 通念)’을 의미하며, 이는 곧 ‘경험법칙(經驗法則)’과도 연결된다. 경험법칙은 ‘경험으로부터 귀납적으로 얻어진 사물의 인과관계와 성상(性狀)에 관한 지식과 법칙’을 말하는데, 경험칙(經驗則)이라고도 부른다.

우리의 옛 속담에 ‘나이가 가르친다’는 말이 있듯이 세상만사를 ‘공부로 얻어진 지식’만으로 온전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 ‘평균인(平均人)’의 관점에서 세상사를 바라볼 수 있는 건전한 양식과 안목, 소통능력이 법관에게 필요하다. 

과거에는 사법시험에 일찍 합격한 20대 초반의 법관이 ‘영감님’이라는 극존칭을 들으면서 근엄하게 판결을 내리는 일이 적지 않았었는데, 세상 물정에 깜깜한 나이 어린 법관이 내린 판결에 국민들이 얼마나 수긍했을지 의문이 든다. 법관은 법을 다루는 스킬만 뛰어난 법률기술자가 돼서는 안 되고, 인간과 사회에 따뜻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 돼야 한다.

‘사랑이 법을 완성시킨다(Love makes law complete)’는 서양 속담이 있다. 사랑을 주고받은 경험, 즉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경험과 연륜을 가진 사람이 법관에 임용되도록 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 20대나 30대 초반보다는 적어도 30대 중반 이후 법관에 임용되도록 하는 것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인생관·세계관 등)과 판단이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너무 이른 나이에 법관이 되도록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 법관 수급의 어려움은 법관 증원과 처우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지 경력기준 완화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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