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적 오락영화 득세에 위기감 만연
150億 저리융자… 사업자 선정여부 관심
예술영화 전용관 사업의 행보가 빨라질 조짐이다. 지난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전국 주요 도시에 모두 7개관 이상의 예술영화관을 운영키로 결정하고 다음달 2~6일 사업자 신청을 받겠다고 발표하면서 연초 문화관광부 업무 보고에서 처음으로 제시됐던 관련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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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술영화관인가=지난해 말 개봉됐던 '라이방'(장현수 감독)의 성적은 참담했다. 전국 28개 스크린에서 개봉했으나 불과 고작 3천7백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대부분의 극장에서 상영 이틀만에 조기 종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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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시대의 느낌을 담은 영화를 철저히 외면한 결과였다. 충무로에선 상업영화의 일방적 득세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예술영화에 대한 위기감이 깊어졌다. 비슷한 계열의 영화를 묶어 재상영한 '와라나고'운동도 벌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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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한국과 미국의 흥행 영화를 제외한 비주류(대부분 예술)영화의 상반기 시장 점유율은 단 2%. 지난해 18%에 비해 급전직하했다. 대대적 극장 확보와 화려한 마케팅 전략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예술영화의 위상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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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는 흔히 상업영화, 혹은 기획영화와 대비된 개념으로 사용된다. 프랑스에선 ▶질적 측면에선 이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뛰어나지만 흥행에선 성공하지 못한 영화 ▶탐구적이고 혁신적인 작품 ▶그간 별로 상영된 적이 없는 프랑스의 삶을 반영한 영화 등 구체적 조건을 법률로 정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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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영진위 산하 예술영화인정소위원회(감독.평론가 등 전문가 다섯명으로 구성)에서 영화 제작사.수입사 등의 신청을 받아 예술영화 여부를 판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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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영화진흥법은 예술영화.한국영화.단편영화 등을 연간 상영일수의 5분의 3 이상 틀 경우 문예진흥기금(입장료의 6.5%)을 환급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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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 전용관 실효성 논란=영진위의 이번 조치는 불균형한 영양(상업성 오락영화)으로 비대해진 충무로 풍토를 바로잡자는 처방전이다. 고른 식단의 영화를 공급해 영화계 전체의 건강성을 높여보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번 안이 여전히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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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돈이다. 영진위는 2년간 연리 1%에 1백50억원의 지원금을 1개 사업자에게 융자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존 극장을 포함해 전국에 7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는 업체를 선정하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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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계에선 1백50억원의 담보를 댈 능력이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예컨대 현재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고 있는 시네큐브나 하이퍼텍 나다 등은 이번 조치를 '그림의 떡'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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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존의 예술영화 상영관과 CGV.메가박스 같은 대형 극장체인이 동참하는 컨소시엄을 고려할 수 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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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확보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영진위의 조건에는 예술영화로 인정받은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연간 상영일수의 5분의 2와 5분 1 이상 상영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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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간 60여편 제작되는 한국영화 가운데 예술영화에 해당되는 작품은 열편 미만인 게 현실이다. 백두대간 이광모 대표는 "지난해 '봄날은 간다' 같은 작품도 예술영화에서 제외됐다"며 "예술영화관이 도입돼도 상영작 부족이란 난관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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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의 묘안은 없나=영진위도 이번 결정의 한계를 알고 있다. 김혜준 정책연구실장은 "영진위도 각 극장에 대한 상영 보조금 지급을 고려했으나 소모성 자금은 지원할 수 없다는 문화관광부의 입장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부족한 컨텐츠는 독립 장편영화, 저예산 디지털 영화 등으로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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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경우 사업자가 선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대형 멀티플렉스들은 수익성이 낮은 예술영화에 대한 관심이 적고, 자금력이 낮은 전문 극장들은 담보력이 없는 까닭이다. 김혜준 실장은 그런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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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위와 전국의 극장들이 1대 1로 개별 계약, 예술영화 상영으로 발생할 극장측의 손실을 영진위가 메워주겠다는 것. 현재 7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고 했다. 그는 연말까지 어떤 형태로든 이번 사안을 매듭짓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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