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현대차와 기아차의 엔진 결함 문제를 내부 고발해 미국 정부기관으로부터 2천430만 달러(280여억 원)의 포상금을 받은 김광호 전 현대차 부장이 "우리나라에선 공익신고를 하지 말라"는 우울한 충고를 전했다고 한다. 한국에선 공익을 위해 비리를 신고해도 보상에 비해 개인의 희생이 너무 크다는 얘기다. 실제로 공익 제보를 했다가 개인적인 낭패를 본 사례들이 많은데, 이번에 보상을 받은 김 씨도 2016년 공익신고를 한 이후 사내 보안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고됐고,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되는 등 큰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법에 따르면 부패 신고의 경우 정부의 수입 회복·증대액의 4~30%를 지급하고, 공익 신고는 4~20%까지 보·포상금을 주는데, 보·포상금의 최대 한도를 30억 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내부 고발로 국가의 수입(합의금·과징금 등)이 발생하면 수익의 10~30%를 고발자에게 보상하는데, 보상 비율은 기여도에 따라 정해질 뿐이고 보상금액에 상한이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익제보를 활성화하려면 보상 상한(30억 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꽤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지금껏 개선되지 않고 있으니 참 답답하다. 정부와 국회는 공익신고 대상 법률에 탈세·배임·횡령 등 재산범죄 관련 법률(형법, 조세범처벌법 등)을 포함하는 등 관련 제도의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생각건대,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제정 등의 노력으로 인해 과거보다는 부패행위가 감소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부패의 독버섯이 잔존해 있다. 이런 은밀한 비리들은 경찰·검찰 등의 사정기관도 발견하기 어렵고 오로지 내부자의 용기 있는 제보만이 그 실체를 세상에 드러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더욱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가 되려면 많은 내부고발자들이 줄지어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공정하고 깨끗하게 바꾸는 영웅이고 은인이므로 마땅히 그들을 격려하고 칭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오래전부터 비리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는 잘못된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내부고발자를 따돌리고 배신자 취급하며 불이익을 주는 사례가 많다. 과거에는 군부대 내의 부조리를 신고하는 ‘소원수리’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만일 어느 한 병사라도 소원수리서에 불평·불만사항을 적어 내면 전체 부대원이 심하게 기합을 받던 일도 있었다. 진실을 말하는 용기 있는 사람을 징벌함으로써 부정부패를 묵과하도록 억압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도 군과 경찰 등에서 내부고발자를 중징계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으니 참 한심하다.   

‘진선미(眞善美)’의 덕목 중 으뜸이 ‘진(眞)’이다. ‘진실’을 밝히고 추구하는 사람을 탄압하는 한 우리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진실을 감추고 거짓이 세상에 판칠 때 모든 불공정과 부패가 싹트게 된다. 그런 점에서 형법 제307조 제1항에 규정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도 시급히 폐지돼야 한다. 내부고발자 등 진실을 드러낸 사람을 형사처벌하는 것이 도대체 가당한 일인가. 유엔 인권위원회가 2011년 3월 21일, 유엔 산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위원회(ICCPR)가 2015년 11월 6일 각각 우리나라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권고했음에도 지금껏 폐지하지 않고 있으니 우리 정부·국회의 무관심·태만이 너무나도 한심스럽다. 

지난 11월 21일 밤에 서울 여의도 KBS스튜디오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2021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마지막까지 국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바라건대,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상·보호를 강화하는 부패방지법 개정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형법 개정을 강력 추진해 임기 내 실현함으로써 문재인정부의 치적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어딘가에라도 불의를 방치하면 모든 곳의 정의가 위태롭게 된다(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명언을 국민 모두가 가슴 깊이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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