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인천이 개항하는 19세기는 이른바 제국주의 시대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제국주의의 속성은 배타적 민족주의와 독점 자본이었는데 이것이 식민지 개척이라는 현실적 상황으로 표출됐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한·중·일은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개척 대상이 됐다. 결국 중국은 개항 이후 아편전쟁을 겪었고, 1860년 북경이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에게 함락됐다. 일본도 막부정권이 무너지고 1868년 메이지유신 정부가 들어섰는데, 보수 세력과 급진 세력의 갈등 속에 제국주의 열강의 압박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위정척사와 개화라는 갈등 속에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이권 쟁탈에 위기의식을 느낀 조선정부는 일본을 견제하고자 하는 청국의 조언을 받아들여 구미열강과 수교할 것을 결정했다. 따라서 각국 외국인들이 교역을 위해 또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인천항으로 밀려들면서 인천은 국제적인 도시로 변모했다.

인천의 각국공동조계는 1884년 체결된 제물포각국조계장정에 의해 일본 및 청국조계를 둘러싼 형태로 중앙동·송학동·북성동·송월동·항동 일대 총면적 46만2천㎡로 구성됐는데 거주한 서양인은 많지 않았다. 1900년을 기준으로 개항장의 인구수를 보면 전체 1만7천507명 중 서구인들은 75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은 영사관 직원이나 해관 직원, 통역, 선교사, 의사, 그리고 일부 상인이었는데 각국공동조계의 땅은 모두 이들이 임차하고 있었고 나라별로는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인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당시 인천 개항장에서 활동했던 주요 인물들을 보면 우선은 아펜젤러, 존스, 랜디스, 빌렘, 드뇌, 코프주교 등과 같이 종교, 의료 및 교육활동을 했던 외국인들이 있다. 아펜젤러 목사는 알려져 있다시피 1885년 선교를 목적으로 인천항에 입국해 내리교회, 한국선교회 및 배재학당, 정동제일교회를 설립했고 언더우드, 존스 등과 함께 지방을 순회하면서 전도 활동을 했다. 

인천내리교회의 제2대 목사였던 존스 역시 선교와 교육 전반에 걸쳐 놀라운 업적을 쌓아올려 ‘내리의 아버지’라 불렸다. 1892년 4월 최초의 사립 교육기관인 영화학교를 인천에 개설했고 최초의 영문 잡지 ‘The Korean Repository’ 발간과 편집에도 관여했으며, 근대 최초의 하와이 이민사업에도 관계했다. 성공회 의료선교사인 랜디스 역시 중구 내동에 성누가병원을 건립하고 헌신적인 활동으로 ‘약대인’이라 불렸으며 영어학교와 고아원을 운영했던 인물이다. 답동성당 초대 주임을 맡았던 빌렘, 박문학교를 운영하고 오늘날의 답동성당을 완공했던 드뇌 신부, 그리고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인 성미가엘교회를 세웠던 코프 주교 등이 있다.

종교 활동 외에 외교관이자 의료선교사였던 알렌과 우리탕, 라포르트, 맥코넬 등 영사관이나 해관 등 공공기관에서 활동했던 인물, 타운센드, 데쉴러, 모스, 칼 발트, 존스턴 등 중개무역이나 각종 이권사업, 상업 등의 활동을 했던 사업가, 그리고 사바찐, 베코프스키 등 건축이나 기반시설 마련을 위해 와 있던 외국인들이 있다. 

알렌의 경우는 이민사업, 경인철도 부설 등 이권사업과 관련돼 알려졌던 인물이다. 갑신정변 때 민영익을 치료했던 계기로 왕실 의사와 고종의 정치 고문이 됐으며,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 설립에 기여했다. 데쉴러는 운산금광 재정 책임자로 입국해 동서개발회사와 데쉴러 은행을 운영했고 이민사업에 참여했는데, 그를 비롯한 모스, 타운센드 등 미국인 사업자들은 알렌의 후원 아래 당시 인천을 무대로 경인철도 부설사업, 운산금광 채굴사업, 무역사업 등에 있어서 협력관계를 형성했다. 러시아인 건축사 사바찐은 인천 해관 청사, 세창양행 숙사, 러시아 영사관, 제물포구락부, 각국공원 등을 설계했던 인물이다. 

근대의 격동기에 먼 이국땅 조선에 와서 다양한 활동을 한 외국인들의 자취는 개항기 인천 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여기에 인천에서 장기간 체류하지는 않았지만 일시적으로 혹은 개인적인 목적으로 방문했던 민속학자, 외교관, 여행가 등이 남긴 인천에 대한 인상이나 기록도 개항 후 인천 모습을 복원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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