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해가 바뀌면 새해부터 달라지는 법령과 정책에 유념해야 한다. "바뀐지 몰랐다"는 변명은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검찰 피의자신문조서(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제도(개정된 형사소송법 제312조)가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것을 큰 변화의 계기로 받아들인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67년 만에 형사사법 분야에 큰 변화가 생겨난 것인데, 이는 검찰 권력의 오·남용을 제한하기 위한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다.

종래에는 특별한 하자가 없는 이상 검찰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했지만, 올 1월 1일부터 기소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신문조서 내용을 인정할 때만 증거로 활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피고인이 검찰 수사 단계에서 했던 진술을 재판 시 부인하면 피신조서는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되면서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게 됐다.

이 제도의 취지는 강압식 수사관행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함으로써 법정에서 원·피고 간 공방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가리자는 데 있다.

기대와 우려가 크게 교차한다. ‘조서재판’의 출발점이었던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함으로써 피고인의 인권이 강하게 보장될 수 있게 된다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예상되는 문제점으로는 재판의 장기화, 변호사 비용의 증가, 범죄(특히 부패·조직범죄) 입증의 어려움 가중, 성폭력 사건 등에서 피해자의 2차 피해 가능성 확대 등이다.

법원과 검찰은 바뀐 제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법원은 간이공판 절차의 확대, 법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검찰도 매뉴얼을 작성·배포했는데, 수사단계에서는 폭넓은 진술자들의 증언 확보, 영상녹화 등 기록 방식의 다양화, 과학수사를 통한 증거 확보 등을, 공판단계에서는 피고인신문·조사자 증언 활성화, 증거보전 절차 활용, 공범 진술 효과적 활용 등을 추진 중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피신조서의 증거능력 제한으로 인해 강압수사가 감소되고 피고인의 인권 보장이 강화된다는 점은 크게 반길 일이다. 요즘 같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는 국민 중 그 어느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든 예기치 않게 피의자가 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강압수사로 인권을 침해당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특히나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억울하게 누명을 쓸 위험에 처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면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한 것은 환영할 일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피신조서의 증거능력 제한으로 인해 ‘불기소율’과 ‘무죄율’이 높아질 것이 예상되는 점은 국민들 입장에서 못마땅하다.  종래에도 범죄자들이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가 무죄로 나오거나 약한 처벌을 받는 일이 잦았는데, 그런 일이 더 많아질 것을 생각하면 불안감이 가중된다. 죄를 짓고도 "증거가 있느냐?"며 오히려 큰소리치고 거리를 활보하며 법을 무시·조롱하는 일이 빈발할 것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은 ‘죄를 지으면 반드시 처벌 받는다’는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검찰은 피고인이 법정에서 피신조서의 내용을 쉽사리 부인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피고인의 진술 번복과 법정 태도를 구형에 적극 반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피고인의 진술 번복과 법정 태도를 이유로 강한 처벌을 받도록 한다는 것은 근본적 대책이 되기 어렵거니와 일종의 ‘괘씸죄’ 적용이 될 수 있으므로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

차라리 차제에 외국의 입법례를 참작해 피의자가 범죄를 자백하면 형량을 낮춰 주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유죄협상제)’과 허위의 진술이나 자료 제출 등으로 수사나 재판 절차를 막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사법방해죄’의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탐정제도를 활성화함으로써 재판에서 활용될 증거의 수집이 실질적으로 강화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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