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달 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상시 근로자 50명 이상인 사업 또는 사업장(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의 공사)에 우선적으로 시행됐다. 개인사업자나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공사)에 대해서는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인 2024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은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같은 해 1월 26일 제정됐고 1년의 유예기간을 지나 마침내 시행되기 시작했는데, 기업의 준비상황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평가된다. 산업현장에서는 경영계나 노동계 모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경영계는 경영자 구인난·경영 위축을 걱정하고 있고, 노동계에서는 중대산업재해에 관한 규정이 5인 미만의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법의 실효성이 약화됐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6조는 이 법에 따른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해 사망의 결과를 초래한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을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징역과 벌금을 병과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또는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더해 중대산업재해로 선고받은 형이 확정된 후 5년 이내에 다시 위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각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예방’이 목적인 법이기 때문에 기업경영자들이 과도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법이 ‘공포’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전문인력 부족, 안전·보건시설 확충 비용 마련 등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한다.

특히 법규정이 모호하고 불명확해서 예측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예를 들면 이 법 제2조 제9호는 ‘경영책임자 등’을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 대상자의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안전·보건의무의 내용도 그 범위가 불명확하다는 지적도 있다. 즉, 이 법 제4조 제1항에 따르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는 특성과 규모에 따라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을 구축할 것’을 의무로 규정했는데, 그 범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중대산업재해가 적용되는 금속중독 등 직업상 질병과 관련해서도 중증도와 치료기간의 제한이 없어 경미한 부상도 중대재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법 시행 이후 문제점이 드러나면 신속히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최근 상당수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대비해 안전보건업무를 총괄하는 안전보건담당이사를 신설하는 등(안전보건담당이사를 뒀더라도 대표이사의 사업총괄 책임이 완전 면책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률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로펌들도 전담팀(TF)을 만드는 등 예상되는 변화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재사고를 줄이는 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법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안전의식을 고양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단기간 내의 고도압축 경제성장을 경험하면서 특유의 ‘빨리빨리문화’에 중독돼 있다시피 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오랫동안 지속된 군사문화의 폐해로 인해 "(과정과 내용이야 어떻든)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시받은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라는 그릇된 인식이 국민들 뇌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와 같은 ‘과도하게 서두르는 문화’와 ‘획일적·피동적인 목표달성지상주의’를 바꿔 나가야 비로소 ‘OECD 산재사망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을 벗게 되리라고 본다. ‘일터에서 죽지 않을 권리’가 노동자들에게 온전히 보장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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