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우크라이나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오래된 영화가 있다. 소피아 로렌,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등이 열연한 ‘해바라기’다.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이 제작한 이탈리아·프랑스·소련의 합작영화로, 제2차 세계대전이 갈라놓은 남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영화에는 구소련의 우크라이나 지방에 펼쳐진 드넓은 해바라기 밭의 아름다운 정경이 나오는데, 주제음악 ‘사랑의 상실(loss of love)’의 애잔한 선율과 함께 관객들에게 오래도록 짙은 인상을 남겨 준다. 전쟁 후 생사를 모르는 남편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분)를 찾아 나선 여주인공 지오반나(소피아 로렌)의 순애보적 사랑과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깊은 상처를 주제로 한 이 영화는 1970년 제작됐는데, 구소련에서 촬영됐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수입이 금지되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야 개봉돼 국내 영화애호가들의 사랑을 지금껏 받고 있다. 

평화롭고 아름답던 우크라이나가 지금 전쟁의 화염에 휩싸여 있다. 우크라이나는 1980년대 고르바초프의 페테스트로이카 정책 이후 소련 중앙정부의 장악력이 약화됨에 따라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했는데, 독립 이후 점차 서방세계와 가까워지고 더 나아가 NATO까지 가입하려고 하자 러시아가 이를 제어하기 위해 지난달 24일 침공을 개시한 것이다. 독일 나치 히틀러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수십만 대군의 전면전이 발발한 사실은 전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줬다. 

종래 미국 등 서방세계와 구소련은 과거 핵전쟁의 위협 와중에서도 나름 ‘냉전’을 유지하면서 대규모 전면전은 자제해 왔는데, 러시아의 침공이 혹시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지 않을까 해 전 세계인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사태의 진전을 지켜보고 있다. 이 전쟁이 어떤 모습으로 종결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많은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지구촌에 ‘신냉전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러시아의 ‘구소련제국의 영광 되살리기’ 구상이 우크라이나에 그치지 않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의 주변 국가에까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이러한 야심에 맞서 미국 등 서방세계는 향후 우방 간 안보 전선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국제정치적 ‘안보 환경’은 필연코 우리나라의 남북관계 및 외교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강대국 간의 갈등·긴장이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평화와 국익을 어떻게 지켜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외교·국방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참작해 신중하고 면밀한 대책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현재 여야의 선거운동 열기가 한층 가열돼 있다. 그 와중에 각 후보와 진영에서 외교·국방정책과 관련해 가끔 다소 신중하지 못한 언사가 튀어나오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옛말에도 있듯이 "한번 내뱉은 말은 주어 담기 어렵다." 아무리 선거에서 자기 편에게 유리한 형국을 조성하기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외교·국방과 관련된 얘기를 즉흥적으로 또는 함부로 발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안 그래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화를 실시간 뉴스로 바라보면서 과거 한국전쟁의 참극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는 우리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자칫 국론 분열까지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에 의한 질서를 ‘이성’에 의한 질서로 바꾸고자 하는 것이 ‘법의 존재 이유’이다. 국가 간 무력 행사로 인해 ‘전쟁과 평화의 법’이라 불리는 ‘국제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간혹 제기되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이성’에 의한 질서, 즉 평화 정착이 실현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이성’의 힘을 믿는 모든 국가와 세계인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조속히 평화를 회복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 밭’을 한가로이 거닐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게 되기를 염원한다. 기회가 되면 나도 한번 찾아가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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