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자월도. 붉은 달이 뜰 때면 바위로 공기놀이를 했다는 마고할미 이야기가 전해진다.
인천 자월도. 붉은 달이 뜰 때면 바위로 공기놀이를 했다는 마고할미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득히 먼 옛날, 서해 바다에 마고할미가 살았대요. 마고할미는 키가 얼마나 큰지 바다를 첨벙첨벙 걸어 다녔고, 힘도 얼마나 센지 흙으로 산을 쌓아 올렸어요. 하루 일을 마치면 마고할미는 밤마다 자월도에서 공기놀이를 했어요. 커다란 바위들이 바다로 떨어질 때면 물고기와 어부들은 깜짝 놀라 줄행랑을 쳤어요. 어느 날 바람의 신 영등할미의 장난으로 공깃돌이 바다 멀리 날아가 버렸어요. 마고할미는 정신없이 공깃돌을 찾아 바다로 헤엄쳐 갔지요. 마고할미는 공깃돌을 다시 찾게 될까요?"

‘자월도 마고할미 공깃돌’ 그림책.
‘자월도 마고할미 공깃돌’ 그림책.

# 168개 섬, 인천 바다와 함께 전해진 보물 ‘해양설화’

인천시 옹진군 자월도에 붉은 달이 뜰 때면 바위를 공깃돌 삼아 놀았다는 마고할미의 이야기다. 마고할미 이야기는 문갑도와 자월도, 백아도 일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설화가 전승됐다. 

선접도(선갑도)에다 흙을 쌓아 올려 한양으로 보낼 삼각산을 만들었는데, 다 쌓고 보니 백 골짜기에 한 골짜기가 모자라 화가 나서 주먹으로 내리치자 조각조각 흩어져 각흘도, 울도, 지도, 백아도 등으로 흩어졌다는 ‘삼각산이 될 뻔한 선갑도’는 조선시대에 생긴 삼각산 설화와 마고할미 설화가 얽혔다. 

마고할미는 풍어의 여신이기도 하다. 풍도 앞 깊은 물골을 건너다 고쟁이를 다 적시게 됐는데 할매의 고쟁이에서 인근 섬사람들이 다 먹고 남을 정도의 새우가 나왔으며, 젖은 고쟁이를 서산 항금산에 널어 말렸는데 지금도 풀이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따오기의 하얀 날개, 백령도
따오기의 하얀 날개, 백령도

마고할미의 이야기처럼 해양도시 인천에는 168개의 섬과 그에 얽힌 보석 같은 해양설화들이 있다. 해양설화는 해양을 배경이나 주제로 삼거나 해양 활동과 체험을 소재로 하는 해양문학이다. 섬의 형성이나 날씨의 예측, 섬에 처음 들어온 조상, 신앙전설, 어업활동 등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인천 해양설화의 콘텐츠화 방안 연구(김창수, 2016)’에 따르면 인천의 이야기 자원은 총 1천862개이고, 이 중 인천의 지역적 특징이 드러나는 해양설화는 279편이다. 

인천 해양설화 가운데 최소의 서사적 요건을 갖추면서 주인공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는 설화는 ‘원순제 이야기’, ‘임경업 장군’ 등 31편으로 나타난다. 

‘연평도 해신이 된 임경업 장군’ 그림책
‘연평도 해신이 된 임경업 장군’ 그림책

# 연평도 조개파시의 시작 ‘임경업 장군 이야기’

전해 내려오는 설화 중 ‘임경업 장군’ 이야기는 인천 섬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만한 대표적인 이야기다. 이 설화는 조선시대 나라의 충신으로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구출하러 떠나는 여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다. 물과 식량을 모두 잃어버린 임 장군은 가까운 연평도에 배를 대라고 지시한다.

"배가 섬에 닿자 장군은 선원들에게 가시나무(엄나무)를 많이 꺾어 오라고 했다. 선원들이 가시나무를 꺾어 오자 장군은 그것을 간조 때에 맞춰 안목 어장터에 꽂아 놓으라고 했다. 선원들이 생각하기에 장군의 명령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다시 물이 나가는 간조가 되자 장군은 선원들에게 어장 터에 나가 보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가시나무의 가시에는 수많은 고기가 걸렸다. 장군은 이 고기를 양식으로 삼아 명나라로 계속 가게 됐다."

설화 속 임 장군이 잡는 방법을 처음 알아낸 물고기는 바로 ‘조기’였다. 장군이 연평도에서 가시나무를 이용해 조기를 잡은 일화는 조기잡이의 시초로 두고두고 전해 온다. 실제 연평도 근해에서는 파시가 열릴 만큼 조기가 아주 많이 잡혔다는 점을 생각하면, 임경업은 어민의 안전과 풍어, 서해의 안녕을 위해 신으로 좌정한 존재로서 설화로 전승됐다고 읽힌다.

충민사에 있는 임 장군 초상화.
충민사에 있는 임 장군 초상화.

# 백령도 지역명에 얽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옛날 옛적 하늘나라에서 바닷가 백사장을 내려다보던 옥황상제는 걱정이 가득했어요. 쓸쓸한 백사장에 옥황상제는 꽃을 심어 주기로 하고 어여쁜 두 딸을 땅으로 내려보냈죠. 두 딸은 꽃을 심고 정해진 날에 만나기로 했어요. 하지만 동생 선녀가 꽃을 심는 모습을 보고 고기잡이 청년이 도와주다가 서로에게 반하고 말죠. 언니는 하늘의 법을 어긴 동생과 청년이 벌을 받을까 염려하고, 동생은 청년이 벌을 받을까 봐 떠나기로 해요. 선녀가 떠나고 깊은 상심에 빠진 청년 앞에 어느 날 따오기가 작은 종이를 물고 나타났어요."

따오기의 ‘하얀 날개’라는 의미의 백령도에는 하늘 위 선녀와 땅에 사는 청년의 만남과 사랑 이야기가 숨었다. 이 설화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두 사람은 땅과 하늘이라는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어부와 선녀라는 신분 차이도 극복한다. 청년이 선녀에게 보인 적극성과 용기는 선녀의 마음을 움직여 따오기를 청년에게 보낸다. 규율을 지키지 못해 벌 받을 처지였던 선녀는 옥황상제에게 용서를 구한다. 먼 옛날 인천의 섬사람들은 이들의 설화를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사랑과 용기의 메시지를 공유하지 않았을까.

해양설화 그림책 출간 기념 연평초 신간 아동도서 100권 기증식.
해양설화 그림책 출간 기념 연평초 신간 아동도서 100권 기증식.

# 해양도시의 자긍심,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해양설화

인천시는 해양도시로서 주요한 자원인 해양설화를 활용하려고 2018년부터 인천 해양(섬)설화 그림책을 제작했다. 매년 2권씩 지난해까지 총 8권의 책이 나왔으며, 올해까지 10권을 펴낼 예정이다.

첫해에 나온 「백령도의 명궁 거타지」는 신라 진성여왕 때 활약했던 사신 거타지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백령도를 배경으로 요괴 사미승을 무찌르고 서해약과 그의 딸을 구한 거타지 이야기다. 

「대청도를 사랑한 태자」는 훗날 원나라 황제가 되는 원 순제의 대청도 유배생활과 위기, 그리고 그를 도와준 신향의 기묘한 사연을 담았다. 「효종이 사랑한 명마, 강화 벌대총」은 조선 효종이 특별히 아끼고 예뻐했다는 강화도의 명마 벌대총에 얽힌 설화이며, 「장봉도 어부와 인어」는 마음씨 좋은 장봉도 어부 부부가 그물에 걸린 인어를 놓아준 뒤 물고기를 많이 잡게 됐다는 설화가 담겼다. 

앞서 소개한 「연평도 해신이 된 임경업 장군」과 「자월도 마고할미 공깃돌」, 「따오기의 하얀 날개, 백령도」도 그림책으로 나왔다. 그림책에 담긴 인천의 해양설화는 도서관과 학교, 유치원을 통해 지역 아동들에게 전해진다. 또 인천 섬지역 주민센터와 기관, 전국 거점도서관 등 1천200여 곳에 비치했다. 특히 인천 섬지역 초등학교에는 판매수익을 활용해 신간 아동도서를 기증하면서 의미를 더했다.

북콘서트에서 아이들이 그림책과 사진을 찍고 있다.
북콘서트에서 아이들이 그림책과 사진을 찍고 있다.

책으로 펴낸 해양설화는 북콘서트와 포토존 운영을 통해 시민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갔다. 2018년 영종지역 유치원에서 열린 기증식을 시작으로 2019년에는 북포초에서 북 뮤지컬 공연과 작가와의 만남을 열었다. 2020년에는 연평초에서 기증식과 모션그래픽 상영을 진행했으며, 지난해는 코로나19로 그림책을 활용한 포토존을 설치하고 원화 제작 전시를 진행함으로써 시민들에게 공유됐다.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는 "구전돼 온 해양설화는 해양도시 인천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며 "해양설화를 알리는 일은 시민들에게는 해양도시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나아가 역사문화도시 인천의 정체성을 홍보하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사진=<인천시·옹진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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