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우 인천대학교 명예교수
김준우 인천대학교 명예교수

역대 비호감 선거로 치러진 제20대 대선은 0.73%라는 박빙의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어김없이 이번에도 선거가 끝나자마자 모든 매체가 당선인에게 청구서를 가득 실어내고 있다. 그러나 정치신인인 당선인에게 이것저것 잡다하게 요구하기보다는 그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번 선거 과정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윤석열 당선인의 정국 운영 걸림돌을 몇 가지 추려 보면 크게 내부적인 것 그리고 외부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내부적인 것에는 무엇보다도 국가 비전과 철학의 부재이고, 아울러 그 자신의 출신 문제이다. 사실 국가의 수장을 뽑는 대선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국가 비전이나 정책은 없었고, 선거기간 내내 포퓰리즘 정책과 상대방 후보와 후보 가족에 대한 비방으로 일관됐다. 그나마 내놓은 정책도 서로 비슷해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경제 회생 운운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을 들먹이고, 국민의힘 후보가 오히려 포퓰리즘 공약 등을 내세워 이름을 가리면 어느 당 공약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는 자신의 국가 비전이 없다 보니 표를 위해서는 세금 퍼 주기 공약이나 상대방 흠집 내기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당장 국가 운영에 대한 큰 틀이 없다 보니 정책의 우선순위나 방향 설정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윤석열 당선인이 정치 경험이나 정치적 기반이 약하다는 것과 문재인정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검찰을 흔들려는 조국 전 장관에 대한 반발로 문을 박차고 나왔지만 그의 근간은 어쨌든 문재인정권이다. 그곳에서 권력 형성 과정을 눈으로 지켜봤고, 또한 직접 칼을 쥐고 문재인 정적들을 쳐낸 그 핵심 가신으로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인 김건희 씨 말대로 옮겨간 상대당에서 떠밀려서 얼떨결에 대통령까지 올라왔지만 아직은 그들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선거기간 중 ‘정권 심판’을 언급했다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말을 들은 뒤 다시는 심판이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국민이 그에게 그토록 원하는 ‘정권 심판’과는 달리 ‘정권 교체’로,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정권 교대’ 형태로 입장을 바꾸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정치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외부적 요인도 만만치 않다. 먼저 초박빙 선거 결과가 걸림돌이다. 47%와 48%, 약 27만 표차, 정확히 전 국민이 두 쪽으로 쪼개졌다는 것이고 비등한 양편의 연정 그리고 합치, 협치를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는 한쪽이 우세하거나 전쟁과 같은 국가 위기여야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현재 여소야대이고, 언론과 사법부 역시 상대쪽 사람들이 잡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생각과 반하는 정책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실질 세력인 노동계를 비롯한 각종 단체들 그리고 이들과 연계한 언론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결사 항전할 것이고, 자칫 광우병 사태나 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서처럼 촛불시위가 정권 초반부터 터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또다시 많은 국민이 동참하게 될 것이고, 국가는 다시 큰 혼돈으로 빠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또한 문재인정권에서 저지른 각종 패착들, 즉 친북과 친중 외교, 부동산정책 실패, 탈원전 정책, 무리한 태양광 사업, 각종 규제 등을 바로잡으려면 상당한 시일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시급한 경제 문제만 하더라도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국의 경제 완급 조절로 인해 국제적 경제환경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당장 규제를 풀고 기업을 독려한다 하더라도 사회가 반응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더욱이 공약 실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계속 푼다면 국가 경제는 경제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걱정하듯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코로나가 아직 기승을 부리는 상태에서 국민의 입을 막기 위해서는 돈을 찍어 뿌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사실상 없다. 즉, 문재인정권이 뿌린 실책을 되돌릴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희망을 갖는다 하더라도 험한 길에 놓인 초보운전자 윤석열 당선인이 처한 상황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권력자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지지 기반이 약할수록 그리고 자신의 권력이 약하다고 느낄수록 항상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참기 어려운 것이다. 박근혜정부로부터 좌천 당한 후 문재인정권에서 그의 한풀이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결국 윤석열 당선인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켜봤던, 그리고 자신이 직접 뛰었던 문재인의 성공적 권력 유지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방식처럼 언론과 검찰, 사법부와 행정 그리고 입법부를 그의 검찰 경험을 통해 그리고 그의 뿌리인 검찰 세력의 도움으로 장악하려 할 것임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선한 권력이 없는 것과 같이 선한 정권도 없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알렉시 토크빌은 이 점을 지적했다. "어떻게 해서 정권이 들어서면 국민은 노예가 된다. 다시 신임을 물을 때 노예의 위치는 잠시 벗어나지만 정권이 선정되는 순간 국민은 자기 할 일은 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예전의 노예로 돌아간다." 그는 군림하는 정권과 힘없는 국민을 군주와 노예의 관계로 비판한다.  즉, 국민이 선거로 당선인을 뽑으면 그것을 끝으로 잊는 것이 아니라 그를 감시하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새로운 시대인 만큼 국민이 변해야 한다. 쉽게 우리가 감정에, 사소한 일에 휩쓸리지 않도록 냉철한 판단과 목소리를 냄으로써 새로운 정권에 채찍과 힘을 실어 주는 그런 슬기로운 국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모두가 외치는 화합과 협치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순수한 마음으로 국가를 위해 자기의 권력 기반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순진한 것이다. 오히려 냉철한 지식과 판단으로 무장해 그에게 자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감시와 요구를 해야 한다. 정치는 선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시작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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