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를 찾은 점박이 물범.
백령도를 찾은 점박이 물범.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는 인천에서 바닷길로 193㎞ 떨어진 우리나라 최북단 섬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라는 인식이 강하면서도 사람의 손길을 많이 타지 않아 사곶해변, 두무진 등 청정 해안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특히 멸종 위기 동물인 점박이물범의 주요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2019년 인천시의 공식 캐릭터로 선정되면서 시민들 곁으로 다가온 점박이물범은 사실 귀한 손님이다. 천연기념물 제331호이자 2004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2007년 보호대상해양생물 등으로 지정됐다.

황해지역 점박이물범은 1940년대 약 8천 마리가 서식했다고 알려졌으나 1980년대 약 2천300마리, 1990년대 약 1천 마리까지 줄었다. 점박이물범은 번식지인 중국에서 밀렵 활동이 빈번하고 발해만 일대의 급속한 산업 개발, 갯벌 매립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인한 번식지 빙하 감소, 해양쓰레기, 해양생태계 변화 등이 개체 수 감소 원인으로 꼽힌다. 다행히 현재는 점박이물범 보호활동으로 개체 수가 늘어 약 1천500마리 정도가 서식한다고 추정된다. 

점박이물범이 언제부터 백령도에 찾아왔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본격적인 개체 수 보호활동은 2004년 백령도 점박이물범 실태조사를 기점으로 시작됐다. 

백령도 주민들이 점박이물범 서식지 정화활동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령도 주민들이 점박이물범 서식지 정화활동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천녹색연합 등 지역 환경단체는 2004년부터 지역주민들과 해양생태관광 시범사업, 모니터링, 생태해설가 양성교육, 캠페인 등 보호활동을 진행해 왔다. 이에 더해 백령도 지역 주민들은 황해물범시민사업단의 도움을 받아 2013년 ‘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을 구성했다. 2017년에는 백령중·고 학생들이 ‘점박이물범 생태학교 동아리’를 만들어 점박이물범 모니터링과 해양쓰레기 수거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백령도에는 매년 300~400여 마리의 점박이물범이 2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머물다 간다. 올해도 점박이물범이 찾아오는 2월이 되면서 백령도 주민들과 백령도 생태해설사들이 마중 준비를 시작했다.

박정운 황해물범 시민사업단장은 "백령도 주민단체인 ‘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소속 주민들이 물이 빠지는 시간에 맞춰 바다로 나가 혹시나 점박이물범이 찾아오지 않았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살펴본다"며 "망원경이 있는 심청각 근처에서 근무하는 생태해설사들은 근무시간에 틈틈이 망원경으로 하늬바다와 물범바위 주위를 살펴본다. 그러다 올해 첫 번째 점박이물범을 발견하게 되면 섬 주민들에게 공유하고 마을이 떠들썩해진다"고 말했다.

점박이물범은 출산기인 3∼5월이 지나 더위가 찾아오면 하늬바다 물범바위나 연봉바위, 두무진 물범바위 주변에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백령도 주민들이 바빠지기 시작하는 시기도 이즈음이다.

이때부터는 ‘점박이물범생태학교동아리’도 월 1회 점박이물범 모니터링을 돕는다. 학생들은 물범바위가 육안으로 보이는 하늬바다 해변에서 망원경으로 물범바위를 관찰해 개체 수를 세고, 물범들을 사진 촬영하는 활동을 한다.

환경단체는 물론 해양수산부와 백령도 주민들까지 점박이물범을 보존하려고 힘을 합해 가시적인 성과도 이뤘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8년 백령도 하늬바다에 설치된 섬 형태의 물범 인공쉼터다.

물범들이 주로 휴식을 취하는 물범바위 주변에 설치된 인공쉼터는 길이 20m, 폭 17.5m로 최대한 인공적인 요소를 배제한 자연암초 형태로 조성됐다. 협소한 물범바위 위에서 자리 다툼을 벌이는 물범들에게 새로운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동시에 인공쉼터가 어초 기능을 하면서 쥐노래미나 조피볼락 등 물고기들의 서식처로 활용되기도 한다. 해수부는 주변 해역에 패류·치어 등 수산자원을 방류해 점박이물범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지역 어업인에게는 어획량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린다.

인공쉼터를 설치한 뒤 인천녹색연합 황해물범시민사업단이 매년 모니터링을 진행한 결과 점박이물범이 안착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2018년 조성 이후 현재까지 물범 인공쉼터 이용 횟수는 2019년 8회, 2020년 2회, 2021년 9회, 총 19회가 관찰됐다. 물범 인공쉼터 중 작은 바위인 제1서식지는 6회, 큰 바위인 제2서식지는 13회 이용했다. 이용 개체 수는 2019년 최대 22마리가 확인된 뒤 계속 10여 마리 내외로 관측됐다. 물범 인공쉼터뿐만 아니라 2020년부터는 인근의 주변 바위를 이용하면서 활동 범위가 점차 늘어나는 현상도 나타났다. 

백령면 진촌리에 위치한 황해물범시민사업단 사무실 개소식.
백령면 진촌리에 위치한 황해물범시민사업단 사무실 개소식.

이처럼 점박이물범을 보호하려고 지역주민들이 솔선수범으로 나섰지만 한때는 어민들의 조업활동을 방해하는 천덕꾸러기나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백령도는 지리적으로 북방한계선(NLL)과 어업한계선에 걸치는 통에 어장이 좁아 어민의 조업구역과 물범들의 먹이활동 구역이 겹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활동으로 어자원을 빼앗기는 와중에 노래미나 까나리 등을 먹는 물범들이 마냥 달갑지는 않았다. 점박이물범들이 그물에 담긴 물고기를 먹으려 그물을 찢거나 통발을 망가뜨리는 일도 잦았다.

이런 점박이물범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시와 환경단체는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모니터링사업과 백령도 청소년 점박이물범 생태학교 운영, 생태해설사 양성사업, 백령도 자연자원과 연계한 생태관광 시범사업 등 점박이물범에 대한 긍정적 여론 형성과 관심 확산에 기여하는 인식 증진 사업들을 추진해 왔다.

박정운 단장은 "현지 어민들 입장에서 점박이물범은 어업활동의 경쟁 상대이기도 했고, 옛날부터 낚시를 하거나 수영을 할 때마다 워낙 흔하게 보던 동물이었기 때문에 그냥 일상의 한 부분으로만 인식했던 경향이 있었다"며 "하지만 점박이물범 홍보활동을 진행하고 백령도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늘어나자 이제는 점박이물범의 사랑스러움을 입 모아 알리신다"고 말했다.

그 결과 애물단지였던 점박이물범이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는 해양생물자원으로 거듭났다. 백령도 하늬해변과 진촌리 마을이 지난해 인천시 최초로 국가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됐다.

‘백령도 청소년 겨울 철새학교’에서 이동물새와 물범을 관찰하고 있는 학생들.
‘백령도 청소년 겨울 철새학교’에서 이동물새와 물범을 관찰하고 있는 학생들.

환경부는 2021년 5월 최근 국가 생태관광지역 공모에서 백령도와 충북 옥천 대청호 안터지구,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3곳을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했다. 국가 생태관광지역은 환경적으로 보전 가치가 있고 생태계 보호의 중요성을 체험·교육하는 지역이다. 생태관광을 육성하고자 환경부 장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협의해 지정한다. 백령도는 해양보호생물인 점박이물범을 보호하려고 지역주민들이 해양생물의 기초적인 생태조사 필요성을 공감하고 함께 노력하는 분위기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시는 하늬해변과 인근 진촌리 마을 일원에 90억 원을 투입해 2023년까지 생태관광센터와 생태공원, 생태탐방로, 물범 관찰 전망대, 에코빌리지(에코촌)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생태관광센터는 물범 관찰이 가능한 공간을 확보해 연구와 조사, 체험, 보호가 함께 이뤄지는 생태관광 거점공간이다. 지상 2층에 건축총면적 1천178㎡ 규모로 조성되며 커뮤니티 공간과 체험, 교육관, 카페, 기념품숍 등이 설치된다. 생태공원 생태관광센터 부지에 조성되는 소규모 테마공원이다. 생태캐릭터 조형물과 잔디광장, 생태연못 등 휴게공간과 편의시설이 들어선다. 생태탐방로는 생태관광센터를 출발 거점으로 도보 탐방 2개 코스와 일주 차량 1개 코스 등 총 3개 코스로 조성된다. 

이 밖에 지질공원 안내소 옆에 물범을 상시 관찰할 만한 물범 관찰 전망대가 들어선다. 또 연구자나 방문객을 위한 소규모 친환경 숙박시설인 에코빌리지도 만든다.

이를 위해 인천시는 생태관광사업 국비 45억 원 중 우선 2022년 사업비 20억 원을 신규 반영했다. 시는 올해 사업 대상 부지를 매입하고 설계를 진행한 뒤 하반기께 착공할 계획이다. 2023년 말 준공이 목표다.

박정운 단장은 "지난해 생태관광사업에 선정된 이후 주민들과 논의해 물범의 현황 조사와 관광 프로그램 개발을 고민할 계획"이라며 "단순히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기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점박이물범의 서식지가 침범되지 않고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범위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백령도에는 점박이물범뿐만 아니라 지질공원 철새 등 생태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물범이 떠난 겨울에도 백령도의 매력을 알릴 만한 콘텐츠를 발굴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유리 기자 kyr@kihoilbo.co.kr

사진= <황해물범시민사업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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