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소설의 영화화는 각색을 통해 어떤 부분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춰 이야기를 진행시킬 것인지를 결정한다. 소설과 달리 영화는 대략 2시간 내외의 러닝타임 안에서 감정과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작이 유명할수록 이를 각색한 영화가 호평을 받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인 에어’는 무성영화 시절부터 꾸준히 영상화됐다. 2011년 개봉한 ‘제인 에어’는 무려 24번째 버전에 해당한다. 그만큼 원작이 대중에게 호소하는 매력이 높다는 방증일 것이다. 소설 「제인 에어」의 서사는 크게 ‘성장’과 ‘로맨스’로 나뉘는데, 2011년 영화는 사랑으로 무게중심이 흐른 작품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제인은 외삼촌 집에 맡겨지지만 외삼촌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온갖 구박과 학대를 받는다. 사랑받지 못한 상처로 가득한 제인의 내면은 격정과 분노로 가득했고, 제인은 이를 참기보다는 표출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켰다. 그런 제인이 눈엣가시였던 외숙모는 그녀를 결국 로우드 기숙학교로 보내 버린다. 고아들로 가득한 여자 기숙학교는 소녀들의 개성을 무시하고 거침없는 폭력으로 복종을 강요했다. 제인은 그런 불합리한 상황을 견딜 수 없었지만 마음의 벗 헬렌을 만나 사랑과 우정, 인내와 신앙의 가치를 깨우치며 성장한다.

성인이 된 제인은 학교를 떠나 손필드의 가정교사로 입주하고, 그곳에서 성의 주인인 로체스터를 만난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로체스터는 변덕이 심하고 감정 기복도 큰 사람이었다. 점잖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로체스터의 모습은 오히려 위화감을 주지 않았다. 제인은 로체스터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꾸밈없이 전달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고, 둘은 곧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남녀는 서둘러 결혼을 약속하지만 로체스터에게 정신병을 앓는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자신의 곁에 머물러 달라고 애원하고, 제인은 자신의 존재가 사랑에 앞선다고 느껴 그를 떠난다.

손필드를 떠나 방황하던 중 제인은 존 목사의 도움으로 시골마을 선생님으로 1년여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선교활동을 함께 떠나자는 목사의 프러포즈를 받는 순간 로체스터에게 돌아가야 함을 느낀다.

영화는 19세기 중반 영국의 보수적이고 엄격한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당시 여성의 삶은 요즘과는 많이 달랐다. 순종과 희생을 당연시하는 분위기,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하던 때에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부당한 대우에 항변하며 성별과 지위에 관계없이 여성도 감정과 영혼이 있으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제인 에어는 확실히 시대를 앞선 인물임은 분명하다. 때문에 소설은 제인이 주체적인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양한 캐릭터와의 관계를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 내지만 2011년 영화는 로체스터와의 감정과 사랑에 주력한다. 그런 만큼 원작이 제기한 교육, 고용, 사랑, 결혼 등 여성 삶 전반에 관한 문제의식은 상당 부분 약화됐다. 반면 로맨스에 선택과 집중한 결과, 사랑에 울고 웃는 멜로영화의 매력을 잘 살려냈다. 특히 제인의감정을 계절의 변화로 섬세하게 그린 점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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