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용 인천지방법무사회 총무이사
박효용 인천지방법무사회 총무이사

상속인에게서 "생전에 부모님이 거래했던 통장에서 출금하고 싶은데 은행에서는 공동상속인 전원의 동의서나 상속재산분할협의서를 요구한다"라는 상담을 받곤 한다.

피상속인의 사망 이후에도 예금액은 변동될 수 있고, 공동상속인별로 예금 반환 청구 시점이나 반환 요구 계좌가 다를 경우 통일적인 업무처리가 힘들며 상속인들의 개별 청구에 대해 수시로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은행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은행의 이러한 요구는 금전채권과 같이 급부의 내용이 가분인 채권이 공동 상속된 경우 상속 개시와 동시에 당연히 법정상속분에 따라 공동상속인들에게 분할돼 귀속되므로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나, 예외적으로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가분채권도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대결 2014스122)에 연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은행은 상속재산분할 협의 완료 시까지는 그 지급을 거절할 수 있고, 그렇지 않고 일부 상속인의 법정상속분에 따른 예금반환청구에 응했다가 실제로는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다른 상속재산분할 협의가 있는 경우 이중 지급의 위험을 부담할 수 있으므로 상속인 전원의 동의서 등을 제출받지 않은 이상 개별 상속인의 예금 청구에 응하지 않더라도 이행 지체 책임이 없으며 지연손해금 지급의무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상속재산분할 협의 전 일부 상속인이 법정상속분에 따라 예금 반환 청구를 해 은행이 예금 반환을 했다면 그 후 이뤄진 다른 내용의 상속재산분할 협의로 다른 상속인이 은행에 대해 이중으로 청구하거나 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이는 공동상속인 사이 정산의 문제에 불과함), 이미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상속재산분할 협의가 이뤄졌음에도 일부 상속인이 이를 숨긴 채 실제 협의가 이뤄진 상속분이 아니라 이를 초과하는 자신의 기존 법정상속분에 따라 예금 반환 청구를 한 경우 은행이 그런 사정을 모르고 지급했다면 은행은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의 법리에 따라 다른 상속인에 대해서도 그 채무 이행의 효과를 주장(자신의 상속분을 침해당한 상속인은 상속회복청구로 구제받을 수 있다(대판 90다카19470))해 보호받을 수 있으므로 이중 지급 위험을 이유로 상속재산분할 협의 시까지 그 지급을 거절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속인은 상속 개시된 때로부터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를 승계한다(민법 제1005조). 예금채권도 금전채권으로서 피상속인의 사망과 동시에 공동상속인들에게 각 법정상속분에 따라 분할돼 귀속됨이 원칙이다. 따라서 은행은 상속인에게 상속받은 예금의 반환을 청구받을 때 상속 관계를 알 수 있는 상속 관계 증명 서류(제적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등)를 제출받아 이에 응할 의무가 있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이행 청구를 받은 다음 날부터 지체책임(민법 제387조 2항, 대판 72다1066)을 부담한다. 

만약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특별한 사정이 있어 예외적으로 예금채권도 상속재산분할 협의를 완료했거나 상속재산분할심판이 있었다면 그 후 상속인들의 예금반환청구로 이를 알게 된 은행은 그 내용에 따라 예금을 반환하면 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협의나 심판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예외적인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가능성만을 이유로 상속채권의 채무자에 불과한 은행이 그 성립 여부마저 불분명한 공동상속인들의 상속재산분할 협의 완료 시까지 자신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는 없다. 

은행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해도 사실상 상속인의 전부 또는 일부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채권자 불확지 변제공탁’을 해(공탁선례 제2-122호) 자신의 예금 반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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