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대선이 끝나면 주된 관심사는 언제나 인사 문제였다. 누가 어떤 직책을 맡게 될지, 당선인이 누구를 발굴·발탁·중용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던 것이 그동안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지금 뜨거운 관심사는 장소다. "청와대에서 나와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윤 당선자의 제일성이 나왔고, 인수위 대변인은 "기존의 청와대로 들어갈 가능성은 제로"라고 하더니 마침내 용산의 국방부에 대통령 집무실이 차려진다고 공식 발표했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를 거론할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었는데 용산으로 결정되자 장소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난 건 당연지사다. 

사실 정치(politics)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polis)에서 유래됐다. 정치의 근간은 장소이며, 장소는 공간이고 지역이다. 이번 대선에서 지역주의가 바싹 고개를 쳐들고 정치의 장소성이 크게 부각된 걸 감안하면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사 문제는 곧 제일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앞으로 5년의 성공 여부를 가늠해 보는 잣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일찍이 인재(人材)에 대한 시각은 때로 180도 달랐던 적이 많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와 예형의 시각만큼이나 말이다.

조조가 휘하의 인물들을 평했다. "순욱·순유·곽가·정욱은 생각이 깊고 지혜가 뛰어나 한나라를 세운 소하·진평도 따르지 못할 것이며, 장요·허저·이전·악진은 매우 용맹해서 옛 명장도 따르지 못할 것이며, 여건·만총은 종사를 맡아 보며 우금·서황은 선봉을 맡았으며 하후돈은 천하의 기이한 무사이며 조인은 복 많은 장수다."

예형이 껄껄 웃으며 비웃었다. "그 말은 틀렸소이다. 내 알건대 순욱은 초상난 집이나 병자가 있는 집에 심부름이나 갈 정도고, 순유는 무덤이나 지킬 정도며, 정욱은 문지기 노릇이나 할 만하고, 곽가는 축사나 대신 읽으면 좋을 위인이오. 장요는 싸움터에서 북이나 징을 치면 알맞고, 허저는 목장에서 말이나 소를 기르기에 알맞고, 악진은 문서나 조서를 맡아서 읽으면 제격이고, 이전은 급한 서신이나 격문을 보내는 데 적당하고, 여건은 칼을 갈거나 만드는 대장장이나 하는 것이 좋겠고, 만총은 술 찌거나 먹여 두는 것이 좋겠고, 우금은 판대기나 져 나르며 담이나 쌓는 미장이 노릇이 제격이고, 서황은 돼지나 잡아서 개백정 노릇이나 하면 똑 알맞고, 하후돈은 독불장군이고, 조인은 돈 긁어모으는 데 이골난 원님이요, 그 나머지는 그저 옷이나 걸어 둘 횃대 줄이거나 아니면 밥통이거나, 아니면 술통이거나, 아니면 고기보따리일 뿐이오."

예형의 독설(?)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과연 조조의 생각과 예형의 평가 사이에 놓인 간극은 무엇일까? 또 다른 서양어에서 정치는 ‘국민의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들’을 의미한다. 그리스어에서 포리(poly)는 ‘많은’을, 틱스(ticks)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작은 벌레’를 뜻한다. 두 단어를 합친 폴리틱스(politics)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 떼’가 된다.(마이클 돕스 「하우스 오브 카드」)

진드기 떼라고 하지만 어차피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건 리더의 역할이고, 인사는 인재를 구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결말이 난다. 이 점에서 한(漢)을 세운 유방의 설명은 오늘날에도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뒷골목 건달 노릇을 하다가 시운을 만나 천하의 주인이 된 유방이지만 ‘장(長)의 장(長)’으로서 면모는 실로 귀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낙양 남문에서 즉위식을 가진 후 유방이 천하를 얻게 된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짐은 전략을 세우는 데 있어서 장량을 따르지 못하고, 내정에서는 소하에 미치지 못한다. 군대를 지휘하는 일에서는 한신에게 턱도 없이 모자란다. 그러나 짐은 그들을 쓸 줄 알았다.  항우는 인물이 많았으나 한 사람도 제대로 쓸 줄 몰랐기에 패한 것이다."

천하의 인재를 얻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핵심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하는 이른바 적재적소야 말로 성공과 실패의 관건이다. 하찮은 인물이 설치게 만들고 우수한 인재가 뒷전에서 탄식하면 그건 재앙을 부르는 일. "군주 자신이 현명하지 않으면 훌륭한 조언은 무용지물." 마키아벨리의 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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