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류 역사에서 외계인이 아닐까 의심이 들만큼 탁월한 두 민족을 꼽자면 고대 그리스인과 근대 이후 유대인을 들 수 있다. 특히 근대 이후의 세계는 0.2%의 인구로 노벨상 수상자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이 주도해 왔다고 해도 크게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 양자역학의 닐스 보어, 공산주의 사상의 마르크스, 정신분석학의 프로이트, 언어철학의 비트겐슈타인 등 천재 유대인들의 공통점은 그저 탁월한 것이 아니라 기존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제시한 새로운 이론의 창시자라는 점이다. 새 세상을 열어 젖힌 그 경이로운 창의력의 비밀이 뭘까 늘 궁금했다.

 유한계급론의 저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시오니즘 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현대 유럽에서 유대인의 지적 탁월함」이란 제목의 10쪽 짜리 논문을 정치학 학술지에 발표한 바 있다. 베블런이 주장한 유대인 탁월함의 비결은 ‘skeptical animus’인데, 기존의 모든 가르침을 회의주의적 입장에서 공격적으로 반문하는 태도를 말한다. 우리말로 옮기기가 마땅찮은데 ‘회의주의적 반문’, ‘회의주의적 저돌성’ 등으로 번역할 수도 있겠다. 근래 회자되는 ‘후츠파 정신’과 비슷하다. 베블런은 분석하기를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 낯선 땅을 떠돌며 주변인으로서 고난의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특성이 발달됐고 결국 놀라운 창의력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유대인이 자신의 땅에 안착해 살기 시작하면 이런 특성과 능력이 줄어들 것이라고도 예언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궁금증은 여전하다. 셀 수 없이 많은 민족들이 억압과 고난을 겪고 주변인으로 살아 온 것이 사피엔스의 운명이었는데 왜 대부분의 경우 ‘skeptical animus’가 발현되지 않았을까? ‘skeptical animus’는 소크라테스 이래 서양 정신사에서도 흔히 목격되지 않는가? 플라톤의 대화편 「프로타고라스」를 읽을 때 대선배인 프로타고라스에게 악바리 같이 대드는 젊은 소크라테스는 꽤나 무례하게 보였다.

 풀리지 않던 이 궁금증은 저명한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성서 이펙트」을 읽다가 마침내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바로 유대인이 탈무드를 공부하는 태도였다. 탈무드는 구전 율법인 미쉬나와 이에 대한 역대의 주석인 게마라로 이루어져 있는데, 워낙 중요한 내용이라 암스트롱의 말을 다소 길지만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최초의 쌍방향 경전이며, 이 방식은 랍비들이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학생들 역시 랍비들이 했던 것과 같이 토론에 참여해 자기 나름대로 경전 해석에 공헌했다. 개별 페이지의 배열은 매우 중요했다. 논의의 대상이 되는 「미쉬나」의 내용은 가운데에 배열되었으며,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에서 온 현인들의 게마라가 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각각의 페이지마다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빈칸이 마련돼 있었다. 학생들은 「바빌로니아 탈무드」를 통해 성서를 공부하면서 누구의 말도 최종적인 발언이 아니라는 점, 진실은 계속 변화한다는 점, 전승은 신비롭고 가치 있기는 하지만 그것에 자신의 판단을 옭아매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배우게 된다. 학생은 반드시 자기 자신의 게마라를 성스러운 페이지에 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승의 계승이 단절되기 때문이다."

 전율이 일었다. 자신들 종교의 가장 거룩한 경전을 공부하면서도 모든 것을 의심하고 반문하는 이런 태도를 보인 민족이 세계 어디에 있었던가? 신앙의 기준마저 의심하고 반문하는 이런 정신이 그 어떤 기존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겠는가? 그렇지만 이런 도발적 태도는 자왈, 가라사대, 여시아문이 지배적인 대부분의 사회에서 무례하고 불경스럽다고 비판받기 좋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랴, 소크라테스는 그 가르침의 내용보다는 무례할 정도로 공격적인 질문력으로 세계 4대 성인의 반열에 올랐으니. 우리 학생들이 유대인과 같이 ‘skeptical animus’로 무장해 공격적으로 질문을 해 온다면 좀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통해 나도 발전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바람직한 교학상장이 아니겠는가? 기꺼이 환영한다. ‘skeptical ani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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