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원장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원장

제주도 모슬포항 윗길 해안가에서 며칠 머물 때 아침마다 밖에 나와 기다리는 장면이 있었다. 돌고래가 그야말로 무리지어 아침 바다에 흰거품을 내뿜으며 힘차게 지나가면 해안가 사람들은 환호를 보내며 꼭 몇 마디씩 말을 던진다. 이렇듯 자연계, 생태계 속에서 인간과 어떤 동식물들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동화로 소통하고 감성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말 걸기인 셈이다.

몇 년 전 대규모 산불로 호주에 서식하는 귀여운 코알라가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호주 정부가 정식 발표했다. 현재 5만8천 마리 정도에 불과하며, 급격히 개체 수가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다. TV에서 어린아이가 화상 입은 코알라를 안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타까워 하는 장면이 내내 잊혀지지 않는다. 이 산불로 30억 마리의 야생동물과 코알라 6만 마리가 희생됐다고 한다. 북극곰, 판다, 제주 앞바다 남방 큰돌고래 등이 역시 같은 운명으로, 사람과 감정을 나누며 교감하는 자연의 개체들이 기후환경으로 인해 점차 감소되고 있는 것이다. 

은행 지점장 시절 여러 점포장들과 함께 명문 대학 젊은 여자 영문학 교수에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e)’이란 특강을 듣게 됐다. 경영이나 마케팅, 처세학을 기대한 지점장들은 제목에서부터 뜨악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별반 뚜렷한 반응 없는 그런 시간으로 때웠다. 

그런데 "사랑은 서로 알아가고, 보살피며, 존중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교수의 말과 동시에 나는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받아 적기 시작했다. 마케팅 관련 책을 여러 권 펴내고 금융연수원에서 마케팅 관련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서 본능적으로 사랑과 마케팅은 같은 맥락임을 알아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고객으로 보면 ▶알아가며 ▶돌보고 ▶존중하며 ▶책임지는 그런 진행이 한 치 흐트러짐 없이 맞아들어 가는 것이다. 말이라는 소통의 매개로 스토리가 마련되고 기회가 되며 상호공존과 상생의 입장이 확인되는 것이다. 

AI시대, 4차 산업시대 은행 영업은 디지털과 비대면의 격랑에 휩쓸려 가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고 지향점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즈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대면력, 즉 신뢰감이나 인간적 문제 해결은 디지털보다 훨씬 더 무게 있게 다뤄져야 하는 것이 과제이다. 은행 영업의 전통적 본질은 고객과의 대면이며, 상황의 미묘함을 푸는 것 역시 사람의 말, 태도인 것이다. 관계자산 확보와 유지·관리 차원을 떠나 영업을 하며 고객에게 눈을 마주 보고 말을 걸며 스토리를 키워 가는 것은 그 자체가 은행 영업의 본질이다. 

디지털 전환의 편의성은 확장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ESG란 용어가 세계적 화두로 던져지며 AI시대 은행과 기업 거래에서 디지털 트랜스 포메이션과 퍼스널 트랜스 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Personal Transformation) 이 두 가지 축이 맞물리는 접합점이 ESG라는 핵심 개념 공유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데이터나 가시적 자료보다는 CEO의 경영철학, 스마트공장, 스마트공정에 따른 근무(작업)환경, 사회적 가치 실현 경험,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녹여내 본인이 경영에 접목시켜 올바르고 제대로 된 경영을 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ESG 개념이 도입되면서 은행은 분명하게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좋은 거래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축적시켜 사회적 가치와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파트너가 되자고 손짓하는 셈이다. 은행원과 기업의 CEO가 눈을 맞추고 말을 나누며 그런 동반자 의식과 열린 마음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는 것이다. AI시대임에도 일일이 기업고객을 찾아다니며 기후환경문제와 사회적 이슈, 올바른 정도경영에 대해 매순간 진지하게 묻고 답하며 이야깃거리를 쌓아가야 한다. 우크라발 세계경제의 위기를 맞아 기업의 공급망 전략을 새로이 짜야 하는 이 시기에 ESG 맞춤 동반성장은 실물경제와 금융경제의 공동자산인 것이다. 

산업생태계가 급변하면서 은행과 기업은 새로운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 가야 하며, 기업 CEO로서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대한 본인의 실천적 이야기를 해야 하고, 주위 구성원에 대한 배려, 관계자에 대한 행복나눔 같은 사회적 가치에 대해 말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업경영 역시 정도경영, 투명경영으로 새로이 맞는 시대상에 걸맞은 옷을 입어야 한다. 결국 ‘고객에게 말 걸기’는 고객의 가치를 높여 주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의식자산을 높여 주는 일련의 사회적 역할이자 기능인 것이다. 금융영업의 ESG는 고객에게 말 걸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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