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유독 많이 불던 2월 어느 날 익숙한 자유공원 길을 걷다 보니, 이전에도 이런 모습이었던가 싶은 담벼락과 대문이 나왔다. 옛 부잣집 느낌의 대문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눈앞에 아름다운 조경의 정원이 펼쳐진다. 어쩌면 고즈넉하기도 한 나무들과 아기자기한 항아리들을 구경하며 정원을 지나다 보면 한눈에 봐도 멋스러운 건물을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은 옛 시장관사로서 개방되지 않아 시민들이 미처 구경할 기회가 없었던 ‘인천시민愛집’이다.

인천시민愛집 전경.
인천시민愛집 전경.

# 송학동 옛 시장관사

‘관사(官舍)’의 사전적 의미는 ‘관청이 관리에게 빌려 줘 살도록 지은 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남은 관사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에 건축돼 식민통치를 위해 보편화됐고, 이후 이승만 초대 정부와 군사정권도 그대로 답습했다는 점에서 권의주의의 상징이라는 시각이 크다.

인천시 중구 송학동1가에 자리한 송학동 옛 시장관사는 1901년 지어졌다고 추정되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대지면적 2천274㎡에 지하 1층·지상 1층, 건축총면적 368.46㎡ 규모로 지어졌다. 건물이 자리한 곳은 개항 이후 독일인 거류지에 속했고, 당시 일본인 사업가의 별장으로도 사용되는 등 인천 개항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이기도 하다.

이 건물은 1960년대 본격적으로 시장관사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인천의 대표적 관사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 광복 이후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던 해당 건물을 인천시가 1965년 매입했고, 1966년 기존 건물을 철거한 뒤 현재의 한옥을 신축했다. 처음 이 관사를 사용한 시장은 1967년 제14대 김해두 시장으로, 이후 2001년 초대 민선 최기선 시장까지 총 17명이 생활했다.

2001년부터 인천시장관사로서의 역할은 사라지고, 2020년까지 인천역사자료관(시사편찬위원회)으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관사의 역할이 끝났음에도 일반 시민은 여전히 쉽게 드나들지 못했다.

# 시민 품으로 돌아온 ‘인천시민愛집’

송학동 옛 시장관사는 지난해 7월 ‘인천직할시 승격 40주년’을 맞아 온전히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난해는 인천이 1981년 7월 1일 경기도와 분리돼 독립적 광역지방정부인 직할시로 승격한 지 40년이 되던 해로, 시는 이를 기념해 이곳을 시민의 공간으로 새로 조성해 개방했다. 새로운 이름도 시민들이 직접 선정한 ‘인천시민愛집’으로 결정됐다.

본관동은 ‘제물포 한옥 갤러리’로 탈바꿈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시장 집무실로 사용되던 공간은 시민들이 인천의 역사와 문화, 예술 관련 도서를 편히 즐기는 ‘역사 북 쉼터’로 꾸몄다. 좁은 복도는 개항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인천 역사 타임라인이 한눈에 보이는 ‘역사회랑’ 전시로 구현됐다.

또 다이닝룸으로 사용되던 공간은 ‘디지털 갤러리’로서 스마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전시가 펼쳐진다. 안채로 사용되던 방들에서는 시장관사에 얽힌 인물들의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통한 ‘휴먼 라이브러리’ 전시가 전개된다. 인천직할시 승격 40주년 기념 전시인 ‘어서 오십시오. 인천직할시입니다’는 인천 승격 과정과 변화상을 조명한다.

경비동은 ‘역사전망대’로 명명하고 서해와 개항장 일대가 펼쳐진 ‘조망 데크’, 인천 역사를 주제로 한 ‘굿즈 전시’, 드론 기술을 적용한 ‘플라잉 제물포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100년이 넘게 잘 보존돼 온 야외정원은 ‘제물포 정원’으로 이름 붙여 독특한 조경의 산책로로 활용하는 한편, 작은결혼식과 작은음악회 등이 열릴 예정이다.

이처럼 시는 보존 가치가 높은 시장관사 건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권위주의를 벗고 온전히 시민을 위한 복합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운영하고자 노력했다. 또 일부 천장을 개방해 한옥 구조의 정취를 느끼도록 하고, 관리동도 온전히 시민의 쉼터로 돌려주고자 설계 단계부터 심혈을 기울였다는 설명이다.

복도에 연도별로 전시된 인천시 역사.
복도에 연도별로 전시된 인천시 역사.

# 시민이 쉬어 가는 공간

인천시민愛집 곳곳에서는 시의 이러한 고민을 엿보게 된다. 눈길을 사로잡는 기와집 지붕의 멋진 외관을 구경하다 보면 마치 드라마에서나 보던 옛 부잣집에 초대를 받아 방문한 느낌이 든다. 정원의 나무들 역시 이러한 느낌을 한층 더한다.

정말 누군가 사는 집에 초대받은 듯 신발을 벗고 내부로 들어서면 예술품인가 싶은 조명과 지붕, 앉아서 책을 읽어도 될 정도로 아늑한 긴 의자, 따뜻해 보이는 바닥, 그리고 창호 너머로 보이는 정원 등 모든 광경이 어우러진다. 어쩌면 이 모든 광경을 눈에 담느라 잠시 멍하니 시선을 빼앗겼나 싶기도 했다.

넓은 내부 공간을 지나 복도로 가면 인천의 근대 개항기 시절부터의 역사와 주요 사건 등을 연도별로 전시해 놓은 역사회랑을 마주하게 된다. 간략한 글과 그림 등으로 인천의 과거를 정리해 이미 아는 내용임에도 다시 한번 집중해 읽어 보게 됐다.

이어 여덟 대의 스크린으로 강화도 등 인천 섬지역의 밤 풍경을 담은 디지털 갤러리 역시 지나쳐서는 안 될 전시다. 인천 토박이 홍승훈 작가가 은하수와 별무리를 쫓아 오랜 시간 인천 섬을 다니며 카메라에 담은 풍경이 펼쳐지는 순간 아름다우면서도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 밖에 건물 입구 등 곳곳에 전시된 그림 작품들, 인천시민愛집의 모습을 담은 엽서와 점박이물범 인형 등 인천 굿즈를 전시해 판매하는 공간,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작은 카페 너머에 마련된 야외 테라스 등 힐링을 원하는 인천시민이라면 누구나 찾아볼 만한 공간이었다.

중구 신포동 토박이자 현재 미추홀구에 거주하는 김진이(60·여)씨는 "개방 전 올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와 비교했을 때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도 멋진 외관 자체는 많이 변형되지 않아 더욱 좋았다"며 "주변 옛길도 그대로라 매우 정감이 갔는데, 내부는 무척 세련되게 전시돼 의외의 느낌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인천시민愛집 근처에 옛 공관들이 많은데, 이 건물들도 모두 시민을 위한 전시장으로 꾸며서 역사거리처럼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어릴 때 자주 봤던 인천 역사공간들이 도시재생 거점이 돼 다시 살아난다면 시민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될 테니 기쁘지 않겠느냐"고 웃었다. 

인천시민愛집 내부.
인천시민愛집 내부.

# 인천을 상징하는 대표 명소로

이처럼 새롭게 탄생한 인천시민愛집은 지난해 8월 ‘인천시 등록문화재 제1호’로 등록 고시됐다. 시는 2019년 12월 25일 시·도 등록문화재 제도 시행 이후 인천의 역사성과 상징성, 정체성을 대표하는 근현대 문화유산 발굴에 주력해 왔다.

시는 지역 내 50년 이상 된 근대문화유산을 대상으로 관계 전문가의 현지 조사, 문화재위원회 심의, 시민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인천시민愛집을 1호 등록문화재로 선정했다. 총 17명의 시장이 사용하던 근대주택으로서 그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보존할 만한 가치가 크다는 판단이다.

이와 함께 시는 지난해 9월 인천시민愛집과 인근 소금창고 부지(4천234.5㎡)를 시 도시계획시설(문화시설)로 결정해 역사산책공간 조성사업 등의 원활한 추진에 나섰다. 현재 소금창고 부지에는 1930년대 일본에서 유행했던 도시문화주택 형태의 적산가옥(1939년 신축)과 부속 용도의 소금창고 건물이 남은 상태다.

시는 등록문화재 지정과 도시계획시설 신규 결정 등을 통해 이곳이 전시·체험·쉼터 기능의 역사산책 상징 공간으로 거듭난다는 기대다. 이곳과 인접한 제물포구락부, 자유공원과도 공간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계획하는 등 시민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앞으로도 각계각층은 물론 주변 지역 시민들과의 협력을 통해 의미 있고 풍부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겠다"며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복합 역사문화공간으로서 시민들께 사랑받는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사진=<인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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