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올림픽과 월드컵, 세계선수권 대회 등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보여 주며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떨치는 중이다.

그 가운데서도 유독 잘하는 스포츠가 몇 개 있다. 얼마 전 도쿄 올림픽에서 메달을 휩쓴 펜싱을 비롯해 ‘태권도의 나라’로 불리며 맹활약한 태권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기량을 과시한 빙상, ‘피겨의 여왕’ 김연아가 널리 알린 피겨스케이팅 등 다양한 종목에서 활약한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을 잇는 스포츠 중에는 올림픽 등에 등록되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기량 검증을 하지 못하는 종목도 있다. 택견과 씨름이 대표적이다. 이 중 씨름은 택견에 이어 2017년 1월 4일 무형문화재 제131호로 등재됐고, 2018년 11월 26일 남북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수원시청 씨름단 선수들이 모래판 위에서 파이팅을 외쳤다.
수원시청 씨름단 선수들이 모래판 위에서 파이팅을 외쳤다.

그러나 씨름은 다른 무형문화재와 달리 한국 전역에 기반을 두고 보편적으로 공유·전승돼 특정 보유자나 보유 단체를 인정하지는 않는다. 현대 씨름은 남·북한 모두 경상도식 씨름으로 통일됐다. 

씨름이 가장 흥하던 시기는 1970∼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로, 경상도에서 수많은 씨름 유망주가 탄생하고 씨름으로 이름을 날린 선수들이 늘어났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이만기 역시 경남대 출신으로 현대코끼리 씨름단(현 영암군청)에서 활약했다. 이만기 이후 씨름의 명맥을 이은 국민 MC 강호동도 ‘경남 마산의 아들’로 불렸다. 

이 외에도 수많은 씨름 선수들이 배출됐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이렇다 할 선수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때 혜성같이 나타나 각종 씨름대회에서 장사를 배출한 곳이 있다. 바로 경기도, 그 중에서도 수원시다. 올해 대한씨름협회에 등록된 경기도내 씨름단은 수원시청과 용인시청, 양평군청, 광주시청(이상 남자), 안산시청, 화성시청(이상 여자) 등 6개 팀이다. 이 중 가장 유명세를 타며 ‘씨름 명가’로 이름을 떨친 팀은 수원시청이다. 

2003년 1월 창단된 수원시청 씨름단은 당시 코치와 선수 모두를 합해 4명에 불과했으나 ‘명장’ 고형근 전 감독이 2005년부터 창단 감독을 맡으면서 7명으로 늘었다. 

수원시청 씨름단은 창단 2년 뒤인 2007년 태안추석장사대회에서 이주용이 거상장사에 오르면서 팀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고형근 전 감독은 16년 동안 수원시청을 이끌면서 국내 민속씨름 지도자 중 최다인 62회에 걸쳐 장사(우승자)를 배출, 그 면모를 과시했다. 

2007년 태안추석장사대회에서 거상장사에 오른 이주용 선수.
2007년 태안추석장사대회에서 거상장사에 오른 이주용 선수.

# 장사 제조기 수원시청 씨름단

창단 후부터 지금까지 수원시청 씨름단에 속했던 선수들은 윤정수와 이장일, 이용호, 이승호, 임태혁, 이주용, 문형석, 문준석, 김민우, 김기수 등이다. 

윤정수는 경기대 졸업 이후 2007년 수원시청 씨름단에 입단하자마자 설날장사씨름대회에서 청룡·백호 통합장사에 올랐고, 같은 해 추석장사씨름대회에서 청룡장사에 등극했다. 

이듬해 설날장사씨름대회에서 청룡·백호 통합장사 2연패를 달성했는데, 결승전에서 같은 청룡급 김상중(당시 마산시청)을 집어 던지는 괴력을 보였다. 이날 경기는 지금까지도 ‘씨름 레전드’로 남았다. 

그는 2012년 현대삼호 황소코끼리씨름단으로 팀을 옮기기 전까지 청룡장사 2번과 청룡·백호 통합장사 2번을 달성했다. 

현재 용인시청(옛 용인백옥쌀)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인 이장일도 2009년 수원시청에 입단하자마자 설날통합장사씨름대회 백마거상통합장사에 오르며 실력을 뽐냈다. 이용호는 앞서 2008년 문경단오장사씨름대회에서 거상장사에 올랐다. 

지난해까지 수원시청의 맏형 역할을 했던 이승호도 수원시청 씨름단의 주력 선수 중 한 명이었다. 2008년 입단 이후 13년간 수원시의 모래판을 지켜온 이승호는 금강장사 8회와 통합장사 1회를 이뤘다. 당시 그의 별명은 ‘10초의 승부사’였다. 화려한 기술을 앞세워 10초 안에 경기를 결판지어서다. 

특히 ‘씨름의 희열’에서 같은 팀 임태혁과 함께 출연해 라이벌 구도를 펼치며 많은 인기를 끌었고, 이로 인해 수원시청 씨름단의 모습을 전국에 알리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결정해 아쉬움을 남겼다.

‘경량급 씨름의 황제’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임태혁은 우리나라 역대 장사 3위(20회)에 이름을 올렸다. 은퇴한 장사 1, 2위 이만기와 이태현을 제외하면 현역 선수 기준으로는 ‘최다 장사’다. 

경기대 재학 당시 MBC ESPN 대학장사씨름대회 최강전 소장급에서 4년 연속 우승하며 대한씨름협회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2년 동안 42연승을 하며 이만기의 어린 시절과 비교되는 모습을 보여 떡잎부터 남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임태혁은 2011년 수원시청에 입단하자마자 설날장사씨름대회에서 금강장사에 오르며 이름을 드날렸다.

2012년 현대코끼리 씨름단으로 이적한 뒤 2015년까지 대한씨름협회 금강급 최우수상 4년 연속 수상, 단오장사씨름대회 금강장사 4연패 달성 등 많은 활약을 했으나 2016년 수원시청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후 실력을 꾸준히 쌓으며 각종 전국대회를 휩쓴 임태혁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추석장사씨름대회 금강장사 3연패를 달성했다. 최근 수원에서 열린 설날장사씨름대회에선 금강장사에 올라 20번째 장사 타이틀을 획득했다. 

임태혁은 ‘등샅바 밭다리’라는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는데, 오죽하면 주변에서 "씨름이 아니라 예술을 하네"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물론 주 기술이 기본기인 만큼 ‘교과서 응용형 타입’이라고도 평가된다. 이만기는 그를 ‘완성형 선수’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현재 수원시청의 플레잉코치인 이주용은 임태혁 이전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그는 지난해 초까지 18회 장사(금강장사 9회·한라장사 9회) 타이틀을 따내며 현역 최다 장사와 역대 장사 3위를 기록했다. 현재는 임태혁에게 이 타이틀을 내줘 현역 장사 2위, 역대 장사 4위다. 

2018년 보은단오장사대회 이후 갑상샘암 치료를 받아 2년여 동안 쉬었는데,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2020 추석장사씨름대회 한라급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상대 선수들은 이주용과 관련해 "토너먼트 초반 상대하고 싶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는 이주용이 남다른 기술력과 경험으로 현역 선수들을 압도할 만한 실력을 갖췄지만 갑상샘암 후유증으로 잇따라 경기를 치르기는 버거워해서다. 이주용은 지난해 초부터 플레잉코치로 활약 중이다.

최근 설날씨름대회에서 4년여 만에 금강장사 타이틀을 획득한 문형석과 금강급 준우승을 차지한 동생 문준석 형제도 수원시청의 대표 선수들 중 하나다. 

현재 형 문형석은 통산 3번째 금강장사 타이틀을, 동생 문준석은 통산 7번째 장사 타이틀(태백장사 6회·금강장사 1회)을 획득했다. 

이 밖에도 김기수는 이승호, 임태혁과 함께 ‘씨름의 희열’에 출연해 태극장사 결승전에서 임태혁에게 패하며 준우승했을 정도로 실력을 갖췄다. 지난해까지 태안군청 소속이었으나 올해 수원시청으로 이적했다. 

왼쪽부터 2021 예천단오장사씨름대회에서 금강장사에 등극한 이승호 선수. 문형석 선수가 2021 천하장사 씨름대축제에서 금강장사에 올랐다. 임태혁 선수와 문준석 선수가 2022년 설날장사씨름대회에서 각각 금강장사, 태백장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수원시청 씨름단 제공>
왼쪽부터 2021 예천단오장사씨름대회에서 금강장사에 등극한 이승호 선수. 문형석 선수가 2021 천하장사 씨름대축제에서 금강장사에 올랐다. 임태혁 선수와 문준석 선수가 2022년 설날장사씨름대회에서 각각 금강장사, 태백장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수원시청 씨름단 제공>

# 새로운 사령탑, 계속되는 도전

2020년 12월을 마지막으로 고형근 전 감독이 정년퇴임하면서 이충엽 코치가 사령탑을 맡았다. 이충엽 감독의 첫 씨름 대회 데뷔전인 2021 설날장사씨름대회에서는 임태혁이 금강장사에 올랐고 이승호와 문형석이 금강급 2·4위, 문준석이 태백급 준우승, 이효진이 한라급 5위를 달성했다. 

이충엽 감독도 수원시청과의 인연은 오래됐다. 고형근 전 감독과 함께 2007년부터 수원시청 씨름단의 코치를 맡았기 때문이다. 특히 선수 개인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수원시청 씨름단을 원팀으로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선수들과 오래 알고 지내며 소통했던 결과일까. 고형근 전 감독의 손을 떠난 수원시청 씨름단의 활약은 멈출 줄 모른다. 기본기부터 탄탄하게 쌓아 온 정상급 선수들에다 이충엽 감독의 지도력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충엽 감독은 대회를 치르고 나면 아쉬웠던 부분, 보완해야 할 부분을 찾아 선수들을 지도하며 호흡을 맞춘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이주용 플레잉코치와의 호흡도 찰떡궁합이다. 

그 중 가장 으뜸으로 평가되는 건 선수단의 분위기다. 현대 코끼리로 이적했던 임태혁이 수원시청으로 되돌아온 이유도 ‘선수단의 분위기’가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충엽 감독은 "팀 분위기가 정말 좋아 많은 선수들이 오려고 한다"며 "좋은 분위기가 유지되다 보니 좋은 성적으로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날과 추석, 단오, 천하장사 등 명절대회에서 우승하도록 선수단의 컨디션을 관리하고, 운동에 집중할 만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며 "앞으로도 ‘씨름 명가’라는 이름을 이어가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씨름의 선두’이자 ‘씨름 명가’로 거듭난 수원시청 씨름단이 써 내려갈 역사는 앞으로도 이어진다.

김재우 기자 kjw@kihoilbo.co.kr

사진= <수원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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