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애 인천지방법원 조정위원
김미애 인천지방법원 조정위원

코로나19로 인해 방문 고객이 드문 요즘, 상담 예약도 없이 얼굴이 상기된 A고객이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오랫동안 병상에 계셨던 아버님이 몇 달 전에 돌아가셔서 아버님 명의로 된 아파트 한 채를 어머님 명의로 하고 싶은데, 뜻밖에도 10여 년 전 아버님보다 먼저 죽은 남동생의 자녀들이 상속포기를 안 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A는 너무도 분해했는데, 그 이유는 남동생의 자녀들은 남동생이 사망했을 때 이미 상속포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남동생의 사망 당시 상속재산으로 빚이 많았는데, 배우자와는 이혼한 상태였고 자녀 B와 C는 둘 다 미성년자였다고 합니다. 당시 B와 C의 모가 법정대리인으로서 B와 C를 대리해 상속포기를 했고, 그로 인해 차순위 상속인인 부모님께서 부랴부랴 한정상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 아버님은 심장병을 얻어 병상에 오래 계셨고, 어머니와 A가 간호를 할 동안 조카들은 아무 소식이 없었다고 합니다. 고모인 A가 명절 때나 졸업식 때 몇 차례 연락을 시도하려 했으나 조카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바뀌어 도무지 연락이 닿질 않았고, 그렇게 남처럼 아무런 연락이 없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 오랜 투병 끝에 아버님이 돌아가셨고 이에 부모님과 함께 살던 아파트 한 채를 어머님 명의로 하고 싶은데 이제 성년이 된 B와 C가 자신들도 조부에 대한 상속지분이 있다며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10여 년 전 남동생 사망 당시 이미 상속포기를 한 조카들이 조부의 상속재산에 눈독을 들인다는 것이 맞는지 어처구니없다며 A는 억울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대습상속이 가능하려면 상속개시전(피상속인의 사망 전)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 또는 형제자매가 사망하거나 결격자가 된 경우여야 하는데, 상속포기의 경우에도 대습상속이 인정되는지가 문제 됩니다. 

 우선 피상속인의 사망 후 상속포기가 있는 경우, 즉 조부가 돌아가셨는데 부가 상속포기를 한 경우 손자가 대습상속인이 되는지에 대해서 우리 대법원 판례는 1순위 상속인인 자녀 전원이 상속포기를 한 경우 손자녀가 대습상속이 아니라 본위상속을 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규정해 상속포기가 대습상속의 사유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대판 95다27769). 

 다음으로 위 사안과 같이 상속포기의 효과가 대습상속에 미치는지에 대해 우리 판례는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된 후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하면 상속이 개시된 때에 소급하여 그 효력이 생긴다(민법 제1042조). 따라서 제1순위 상속권자인 배우자와 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하면 제2순위에 있는 사람이 상속인이 된다. 상속포기의 효력은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개시된 상속에만 미치고, 그 후 피상속인을 피대습자로 하여 개시된 대습상속에까지 미치지는 않는다. 대습상속은 상속과는 별개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인 데다가 대습상속이 개시되기 전에는 이를 포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종전에 상속인의 상속포기로 피대습자의 직계존속이 피대습자를 상속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피대습자의 직계존속이 사망할 당시 피대습자로부터 상속받은 재산 외에 적극재산이든 소극재산이든 고유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는지에 따라 달리 볼 이유도 없다(대판 2014다39824)"고 판시, 부에 대한 상속포기를 했더라도 대습상속으로 조부의 상속인이 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입니다. 더불어 대습상속도 상속이므로 위 대습상속 또한 상속포기가 가능하지만 위 사안처럼 손자녀가 상속포기를 거부한다면 A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A에겐 안타깝게도 B와 C는 조부에 대한 대습상속인으로서 그들의 아버지의 상속분만큼의 상속지분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 민법(제1008조의 2)은 공동상속인 간에 실질적인 공평을 꾀하고자 기여분 제도를 마련하고 있고, A나 어머님은 기여분을 주장할 수는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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