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용 가평군 관광전문위원
이상용 가평군 관광전문위원

가평군에 두 종류의 생태자원이 있다. 풍성한 산림자원과 청정 수자원이다. 가평군 땅 843.6㎢ 중 산림은 83% 이지만 국유림, 도유림이 적지 않다. 가평군을 관통하는 북한강은 수도권 주민들을 위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안보전략 관점에서, 가평군은 국가 근본이요, 최후 보루다. 얼마나 낙후돼 있는지, 수도권이라 부르기에 민망하게도 오랜 건물이 곳곳에 남아 있어 기록영화 촬영지로 활용할 정도다. 

이렇듯 절절한 애환과 함께 오랜 세월 지역의 음악문화가 축제처럼 전해져 오고 있는데, 바로 가평 아리랑과 북한강 뱃사공 노래이다. 경기 제1봉 화악산을 기점으로 뻗은 화악지맥의 끄트머리, 보납산은 구한말 의병 격전장이었다. 나라 잃은 분노에 스스로 떨쳐 일어난 의병군대가 서울로 진격하다가 최후결전으로 산화한 전투거점이다. 살아남은 의병들은 힘을 모아 다시 3·1 독립만세의 기반을 세웠다. 한국전쟁 초기에는 학도의용군이 내 고장을 지켜 싸웠고, 중공군 침공 때는 연합방어작전을 성공시켜 북으로 진격할 기회를 만든 전략적 요충지였다. 가평군은 항일 의병의 거점이요, 독립운동의 발상지요, 자유민주주의의 최후보루였다. 이토록 값진 역사문화를 상징하는 가평 아리랑은 빼앗긴 억울함보다 그리운 임을 기다린다는 희망의 미래를 담아내고 있다. ‘명지산 중턱에 초가집 짓고 옥같이 맑은 물 옥계수 길어다가 밥 지어 먹세. 자라목 술집네 술 걸러내게 술 한잔 먹고서 한양길 가네. 야월삼경 깊은 밤에 단잠이 오나 그리운 임 내일 모레 기다려진다.’(1997년 경기도 ‘민속예술’에 수록된 가사)

아리랑은 지역마다 고유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정선, 밀양, 진도 아리랑 모두가 이별의 한을 담고 있지만, 가평 아리랑은 아름다운 산천, 밝은 미래와 희망을 노래한다. 국악신문에 의하면, 가평아리랑연구보존회는 자비를 들여 연인산, 보납산, 화악산 골짜기마다 다니며 구전가사를 수집했다고 한다.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가평 아리랑을 정리하고 복원해 전파했던 ‘음악문화의 전설들’ 덕분에 지역의 고유한 전통음악문화가 융성하고 군민들의 자긍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뱃사공 노래는 북한강 수상교통문화에서 시작됐다. 그 천년 세월 동안 북한강에는 탁월한 뱃사공들이 탄생하고 또 사라져 갔다. 그들은 뗏목에 짐을 싣고 강원도 화천을 출발해서 가평을 거쳐 서울 뚝섬까지 오갔다. 북한강 뱃길을 왕래하는 뱃사공들은 꼭 가평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포구에서 빨래하던 아낙네들과 물장구를 튀기다가, 주막에 들러 주막 여인네와 술을 마시며 흥겹게 노래 불렀다. 뱃사공들은 가평 안반지 일대 상권을 활성화하고, 쇠터 주막마을을 형성하고, 돛단배를 만들어 운항했다. 북한강 뱃사공 노래처럼 독특한 수상음악문화는 경기 근대역사유물과 함께 가평 지역 민중의 소리로 끊임없이 진화해 왔던 것이다. ‘보납산 초연대를 이별을 하고서 빛고개 너머로 다 넘어간다. 이러쿵 저러쿵 우리집 낭군아 오신다는 말 한마디 알려나 주지. 사기막 아주머님들 빨래만 빠나요. 한양 가신 도령님이 돌아들 올테요.’(1997년 경기도 ‘민속예술’에 수록된 가사) 

북한강에 그저 낭만과 흥겨움만 있었겠는가? 육중한 목재를 뗏목 가득 싣고 수탄수 돌아칠 때 거센 물결에 휩쓸린 뱃사공이 한둘이 아니었다. 뗏목에 실은 짐을 뚝섬에 부리고 돌아올 때 저승길 유명한 황공탄 거친 물살을 거스르다가 힘에 겨운 나머지 뱃전에 주저앉아 뱃사공 노래를 부르며 다시금 힘을 내곤 했다. 시절이 하 쏜살같고 선박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해 북한강에 친환경 전기유람선이 뜬다고 한다. 가평군, 천 년하고도 삼백 년을 이어온 희생과 질곡의 역사를 되새기는 음악문화 재생 축제가 전제됐으면 좋겠다. 지역공동체가 함께 부르는 평화의 찬가 ‘가평 아리랑’과 ‘북한강 뱃노래’를 후세에 물려주는 것은 세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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