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셨어요. 제자가 모두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할아버지는 남다른 교육철학을 갖고 계셨어요."
 

훈맹정음 창안자 송암 박두성 선생의 손녀 박혜숙(73)씨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이같이 떠올렸다.

박두성 선생은 제대로 된 교육에 목말랐던 시각장애인들을 뜨겁게 교육했다.

손녀 박 씨는 "할아버지는 ‘그들(시각장애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개선하는 도구이자 주체는 교육’이라고 여기셨다"며 "항상 그런 교육을 하는 참된 스승이 되고 싶어 하셨다"고 전했다.

박혜숙 씨는 어린 시절 인천시 중구 율목동에 살았다. 할아버지는 시각장애인을 늘 가족 이상으로 아끼고 사랑하셨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였나, 한식 기왓집에 살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행사를 집 안에서 많이 열었다. 보통 우리집에 방문하는 장애인에게는 항상 대문 밖까지 마중을 나가야 한다고 하셨다. 한번은 대문 앞에서 시각장애인을 맞았다가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각장애인이자 자신의 제자인 이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품었던 박두성 선생은 1926년 11월 4일 최초로 한글점자, 즉 훈맹정음을 창제·반포했고 장애인들의 교육을 위해 힘썼다.

박두성 선생 밑에서 자란 박혜숙 씨는 할아버지의 교육철학을 이어받아 40년 넘게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아이들에게 헌신했다.

박혜숙 씨의 어머니, 즉 박두성 선생의 딸도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로 일했다. 이들 집안은 3대째 교육자의 길을 걸은 셈이다.

박혜숙 씨는 "초등학교 교사로 40년 넘게 일하면서 아이들과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특히 교육으로 아이들의 삶이 변화한다는 할아버지의 교육철학을 잊지 않고 내 자식처럼 아이들을 돌봤는데, 참 자랑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행복한 교직생활을 마치고 이제서야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한 박혜숙 씨지만, 2020년 만들어진 ‘송암 박두성 문화사업회’의 간사로 일하며 할아버지인 박두성 선생의 냄새를 기억하고 그의 교육철학을 잇고자 노력 중이다.

박 씨는 "지난해 12월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에 할아버지 생가가 복원됐다. 2007년부터 10년 넘게 할아버지의 업적이 스며든 생가를 복원해 달라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요청, 드디어 실현됐다"며 "복원된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기뻤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했다.

이제는 할아버지처럼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권익 옹호와 복지 증진을 위해 힘쓰겠다는 박혜숙 씨. 피는 못 속인다 했던가. 그렇게 그의 제2의 삶은 시작됐다.

강인희 기자 kyh88@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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