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웅 변호사
한재웅 변호사

3월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지방선거가 목전이다. 지방선거는 다른 선거에 비해 출마하는 인원이 많다 보니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하기 전부터 시끌벅적하다. 출마를 원하는 사람들이 정당에 공천 신청을 한 뒤 심사와 경선을 거치는 과정이 본선거 못지않게 치열한데, 기초의원선거의 경우 본선거보다도 정당 내부 공천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초의원선거는 각 선거구에서 2~3명을 선출하기 때문에 거대 양당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서 공천한 각 1명은 당선된 것과 다름없고, 3명을 선출하는 선거구에서 나머지 1명이 누가 당선되는지 싸움이다. 최근 진영 대립이 격화되면서 군소정당의 입지는 점점 작아지고 있어 3명을 선출하는 지역구도 대부분 양당 공천자 중 한 명이 선택된다. 그러다 보니 기초의원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정당 공천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기초의원에게는 정당 공천이 당선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2006년을 기점으로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 공천을 허용하고 있다. 당시에는 지역 유지들의 권력화나 군소후보들이 난립하는 문제 등에 대한 반성적인 고려가 있었기 때문에 정당공천제가 시행된 것이지만 현재 기초의원선거가 운영되는 모습을 보면 다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정당 공천의 장점을 살리면서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현명한 개혁안이 나온다면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기초의원을 공천하는 권한이 권력화돼 발생하는 문제점들은 공천이 유지되는 한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고, 정치권에서 다른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도 않다.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기초의원 공천권이 지역구에서 기반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므로 이 문제에 대해 큰 의지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좋은 대안이 없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 끊어 내는 것이 가장 좋다.

기초의원 정당 공천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지방자치제가 형해화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제는 중앙권력으로 독립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기초의원들이 정당에 소속돼 중앙당의 당론에 따라 활동할 경우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해 자유롭게 의정활동을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지방의원 선거에서도 거대 양당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고, 지역위원장이나 당협위원장으로 불리는 정당의 지역책임자가 갖는 공천권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의 기속력이 기초의원들의 자주적 활동을 억압할 정도로 막강하다. 공천을 무기로 기초의원들이 정당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위험이 매우 높아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화되는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다른 측면에서 기초의원 공천제로 지역의 일꾼이 아니라 정당이나 국회의원들에게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 기초의원으로 선출되는 문제가 있다. 이는 거꾸로 이야기하면 기초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주민들을 상대로 한 자치활동이나 봉사보다는 정당 내부 활동과 유력 정치인들과의 인맥 형성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초의원으로 선출된 이후에도 정당 행사 참석, 당원 동원, 대통령·국회의원선거 지원 등 자신의 고유한 업무보다 정당활동에 더 치중해야 한다. 국회의원이나 지역 책임자가 기초의원을 자신의 수하로 여기로 공천을 논공행상에서 나눠 줄 수 있는 한 자리 정도로 간주하는 것이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기초의원이 주민들의 일꾼이 아니라 국회의원 일꾼으로 전락한 것으로 보일 지경이다. 주민들의 직접투표로 선출된 기초의원이 정당에서 충성 경쟁에 내몰리는 현실은 민주적 정당성의 측면에서도 정당하지 않다. 

기초의원 정당 공천은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장단점이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는 거대 양당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강하고, 그 영향력이 지방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지방정부의 예속화가 심하기 때문에 기초의원은 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이 지방자치제 본래의 취지를 살리는 길이고, 나아가 정치 개혁을 위한 한걸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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