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책을 읽을 때마다 어떤 주장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듭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느 날 제자가 물었던 질문입니다. 「공자」를 읽고 느낀 게 많았지만, 그 다음 「장자」를 읽을 때는 여러 군데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공자의 관점으로 장자의 주장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자에게 어떤 책을 읽든 그 책의 저자가 돼 읽어 보라고 권하곤 합니다. 저자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를 그의 관점에서 이해해 보는 겁니다.

「장자」를 읽을 때는 내가 장자가 되고, 니체의 책을 읽을 때는 내가 니체가 돼 읽어가는 겁니다. 이렇게 독서를 하다 보면 어느 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문제 해결 방식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양한 철학자들의 지혜가 ‘나만의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일상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꽃을 바라보고 있을 때는 내가 꽃이 돼 보는 겁니다. 꽃의 입장에서 꽃을 바라보면 꽃과 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나와 하나가 돼 버립니다. 이때는 내가 꽃인지 꽃이 나인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마치 장자가 말한 ‘호접몽’처럼요. 장자가 꿈에 나비가 돼 놀다가 깨어난 뒤 자기가 나비 꿈을 꿨는지, 아니면 나비가 자기의 꿈을 꿨는지 모르겠다고 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경지가 나와 꽃이 하나가 된 상태이고, 이런 경험은 때로 무척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하려면 먼저 ‘건강한 나’가 존재해야만 합니다. ‘건강한 나’란 ‘나만큼이나 다른 존재들도 귀하다고 여기는 나’를 말합니다. 그래야 다른 존재를 사랑으로 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건강한 마음의 눈으로 꽃을 바라볼 때, 나는 꽃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게 되고, 그때 꽃과 나는 하나가 됩니다. 이전에도 그곳에 꽃이 있었지만 그제야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꽃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흠뻑 취하게 돼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런 경지를 디팩 초프라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없다면 이 장미꽃의 향기도 없다. 내가 없다면 이 장미꽃의 색깔도 없다. 내가 없다면 이 장미꽃의 조직도 없다."

이런 이유로 시인 김춘수는 ‘꽃’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과 내가 이렇게 하나가 될 때 나는 꽃을 자세히 관찰하게 됩니다. 그래야 꽃을 더 잘 알게 되고, 그래야 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내 사랑을 듬뿍 받은 그 꽃은 내게 아름다운 꽃과 향기와 황홀한 색으로 응답해 줄 겁니다. 

고(故) 김수영 시인은 풀을 관찰한 결과를 ‘풀’이란 시를 통해 말했습니다. 총 3연으로 이뤄진 시는 있는 그대로의 풀의 연약한 모습(1연)과 그런 연약함을 이겨내는 풀의 강인함을 그렸고(2연), 이런 풀의 삶을 통해 자신이 깨달은 풀의 질긴 생명력(3연)을 읽어냈습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행복은 의외로 우리 곁에 이미 머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먼저 눈길을 주고 그와 하나가 돼 보는 지혜만 있다면요. 내가 네가 돼 보는 태도가 행복의 비밀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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