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아니, 영영 기회가 없을 가능성도 있었다. 예를 다해 거절할 방법이 없지 않았는데, 덥석 응해 버렸다.

서해안 필진이라…. 한 달 전 연락을 받았을 땐 마치 커다란 감투 하나를 쓴 마냥 뿌듯했다. 변방 기자가 취재기사 외에 내 이름 석 자 걸고 쓴 글이 지면에 올라간다는 사실 자체가 영광이요, 가문의 자랑(?)으로 여겨도 무방할 만큼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자신에게 우쭐거리기까지 했으니, 지금 와서 보면 말 다한 셈이다. 높으신 분의 하명에 반기를 들 도리도 없었으니 이를 대의명분으로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머릿속이 새카매진다.

서해안 칼럼은 기호일보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존재했다. 50여 년 전 옛 경기일보(현 경기일보와는 관계없음) 당시의 언론 통제가 낳은 역사 기록물이라 하겠다. 이후 기호일보의 전신인 경기교육신문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호일보에서 가장 장수한 칼럼이다. 2018년 창간 30주년에는 361편을 엄선해 책으로도 엮었다. 부담 백배라는 얘기다.

통상 일간지에서 칼럼에 손을 대는 직급은 데스크(부서장) 이상이다. 소위 기잣밥 좀 드신 난다 긴다 하는 고참들이 맡는다.

대부분 기자들은 ‘취재수첩’이나 ‘기자의 눈’을 쓴다. 취재 계기나 과정, 보도 이후의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상황에 입각해 써 내려간다.

못다 한 비판과 지적으로 한 차례 더 어퍼컷을 먹여도 무방하고, ‘노력해라’ 또는 ‘잘할 거야’라는 격려와 기대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때론 사회적 이슈를 등에 업은 기자 개인의 주장이나 감정을 담기도 한다.

서해안 칼럼은 후자에 가깝다. 이게 더 어렵다는 얘기다. 하여 몇몇 선배 필진들의 글을 정독했다. 창간 30주년 기념 발행본도 읽어 봤다. 진지함에서 나오는 필력이 어마무시(?)했다. 당장이라도 출판사에서 모셔 갈 능력의 글쟁이가 많다는 사실에 놀랍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한 달에 한 번꼴로 돌아오는 줄 알았는데 격주로 써야 한다. 이마저도 무얼 쓰나 머릴 싸매고 있을 때 발견했다. 속았나, 별 생각이 없었나, 우쭐대다 놓쳤나. 이제 와서 따져 본들 바뀔 일이 있겠는가?

2주에 하루이틀은 술 약속 없이도 집에 일찍 가긴 글렀다고 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겠다. 담뱃값이 늘어 부담이겠다. 주저리 주저리, 어설픈 첫인사는 이쯤 해 두련다. 분량 맞추기도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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