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우 인천대 경영대 교수
김준우 인천대 경영대 교수

매년 한국전쟁 기념식은 으레 북한의 남침 규탄이나 동족상잔의 아픔에 대한 회상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형태의 기념식은 그때의 일을 우리 모두 함께 되새김으로써 다시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의식 작업이다. 그러나 70년의 긴 휴전기간 동안 그때의 참혹한 기억도 많이 달라져 집권 정부에 따라서는 북한이 적국(敵國)이라는 극히 기본적인 전제부터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금 한국전쟁의 의의와 그 전쟁이 남긴 숙제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은 태풍과도 같은 것이다. 태풍은 서로 다른 기류가 합쳐져 급기야는 폭발에 이르는 기상변화다. 그래서 파괴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누적됐던 모든 것을 일시에 흩트려 놓아 새로운 시작점을 만들어 낸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케케묵은 규범, 가치관, 질서 그리고 정신세계를 일거에 송두리째 파괴하곤 한다. 이처럼 전쟁은 그 어떤 혁명보다 더 큰 사회적 파괴력을 갖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8·15광복이 물리적 해방이라면 한국전쟁은 진정한 정신적 해방이다. 한국전쟁을 통해 조선 말부터 이어왔던 신분제, 규범, 유교적 가치관 등이 실질적으로 무너졌고, 한국전쟁 이후 등장한 점령군인 미군들에 의해 한국은 미국 문화로 새로 채색됐던 것이다. 일본 치하에서도 일본은 조선의 사회적 이념과 구조인 유교체제 및 신분제를 그들의 통치를 위해 그대로 유지했다. 이러한 뿌리 깊던 조선의 정신적 토대와 관습 등이 무지막지한 전쟁폭력 앞에 무너졌다. 사실 별 의미 없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마당에 정신적·사회적 굴레는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국가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세 가지 힘, 통치이념, 경제력, 그리고 군사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전쟁이 만들어 낸 백지에서 이러한 힘들의 변화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심각한 문제는 이념의 갈등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휴전을 맞이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쪽은 아직 좌익과 우익 세력이 공전하고 있었다. 

이념은 더욱 혼탁해져 여러 다른 이념, 즉 민족, 친북, 좌익, 공산 그리고 진보 이념이 차별 없이 쓰이게 됐고, 이러한 다원화된 이념이 이후 학생운동과 반정부 세력과 함께 소위 민주화 세력으로 각색됐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를 보면 민주화 이념에 대한 이해가 더욱 모호해져 좌익이 진보를 위장한 민주 세력으로,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익이 오히려 발전을 가로막는 보수 세력으로 왜곡돼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민주화라고 일상 쓰는 이념에는 공산, 친북 및 좌익 등과 같이 자유민주주의와 적대적 이념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경제는 미국의 비호 아래 눈부신 성장을 했다. 이승만 시대에 유학한 인재들이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으며, 미국의 저효율산업 아시아 이전 정책의 큰 덕을 보게 됐다. 이런 행운 덕분에 급기야는 소위 선진국 대열에도 진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군사력은 이러한 강력한 경제력에 의해 견인되는 것이 맞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핵무기의 파괴력은 모든 군사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러시아의 비호 아래 경제보다는 군사력을 택한 북한은 재래식보다 저렴한 핵무기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최근에는 핵 보유에 이르게 됐다. 

반대로 우리는 노태우 시절에 핵무기 청정지역으로 결국은 문재인 정부에 와서는 핵발전시설마저도 폐기했다. 핵을 갖는 국가는 유일하게 핵을 갖는 국가만이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제는 핵무기 보유와 같이 북한과 대등한 군사적 균형을 갖지 않는 한 재래식 군사력 증강이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당장 핵을 개발할 수 없다면 결국 미국 동맹관계에서 이를 얻어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금 한국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먼저 해야 할 것은 통치이념, 즉 정치이념의 올바른 설정이다. 이러한 이념 아래서만이 미국과 동맹의 관계에서 경제력과 군사력을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통치이념이 미국과 같이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진보와 보수의 양립이 아니라 극히 다른 이념, 즉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응이라면 그리고 그 극단의 세력이 서로 바꿔 가면서 집권을 하게 된다면 국가 비전이나 정책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달라져 발전은 고사하고 기형적이 되기 마련이다. 

이를 극복하는 길 중 하나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교육과 실천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이념의 진자운동 폭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이러한 이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고, 이는 교육을 통해 이뤄져야만 한다. 보수와 진보가 다른 것이라면 친북과 진보는 더더욱 다른 것이다. 이를 혼동하면 국가는 정체성에 매우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한국전쟁은 끝났으나 그 전쟁을 촉발시킨 좌우의 이념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경각심 이상으로 우리 내부의 좌익 활동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외부의 적은 우리가 힘을 합치면 물리칠 수 있으나 내부의 적은 대적하기가 매우 어려운 법이다. 만약 이러한 경각심을 잃어버린다면 그동안 수많은 희생을 통해 기적처럼 쌓아 올린 풍요로운 자유민주주의는 한낱 신기루에 지나지 않게 된다. 결코 그런 국가를 우리 후대에 물려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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