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천하통일의 전초전이었던 적벽에서 치욕의 패배를 당하고 돌아온 조조가 탄식했다. "아! 봉효만 있었던들 이렇게 참패하지는 않았을 텐데…." 봉효의 이름을 되뇌며 탄식해 마지않은 조조의 심중에 도사린 인재(人才)에 대한 갈망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특출한 한 사람의 인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건 최고 지도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결정권을 행사할 유일한 인물로서의 고뇌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 후 조조는 ‘천하에 인재를 구하는’ 구현령(求賢令)을 내린다. "누구든 능력이 있으면 천거하라. 그를 귀히 쓸 것이다(唯才是擧). 사생활이 어쩌느니, 도덕심이 어쩌느니 하는 한가한 소리는 그만두라"는 엄명과 함께. 이를 두고 후세에서는 능력만 보고 인륜과 도의를 망각한 처사였다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으나, 천하를 두고 다투는 엄중한 시기에 능력이 모자라는데 인륜이나 도의심에서 출중하다고 고위 벼슬을 내린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면서 조조의 능력 위주 발탁을 옹호하는 이들도 많다. 

조조의 능력 위주 발탁은 후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긍정적인 면에서 국가 발전의 초석을 이루거나 한 시대를 태평성대로 이끈 결과가 여럿 있었다. 한편에서는 이런 조조를 비난하며 과거제도에 의한 인재 발굴 내지 측근 위주의 인사를 실행해 패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도 부지기수다. 물론 그런 인재 기용 원칙의 실패라기보다 기개 없는 지도자가 적당주의로 흘러 스스로 망친 예가 더 많기는 하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거듭되는 검찰 출신 인선에 대한 비판을 두고 대통령은 "필요하면 (검찰 출신을) 또 (기용)하겠다"고 밝혀 여당에서조차 검찰 만능주의 인선 운운하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며 "인재를 쓰는 원칙은 같기 때문에 유연하게 하시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으나 반발하는 정치권의 기류는 식지 않는 모양이다. 

검찰 출신 기용 편중에 대해 이런 소란은 사실 자연스럽다고 본다. 그럴 시기이고, 그래야만 하는 때라는 말이다. 그런데 소란스러운 이유는 명확한 반면 소란의 내용이 어딘가 미흡하다. ‘어떤 이’만 도드라지고 ‘무엇’이나 ‘어떻게’는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검찰 출신들이 주요 정책 부서 요직에 임명되고 있는 바에 대해 국민의힘 유력 정치인들 중 누가 ‘윤핵관’이고 아니냐, 혹은 자신들이 가야 할 자리를 정당 외부자들이 차지하게 돼 불만이 크다는 그런 문제는 아닐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어느 부서 출신이다가 아니라 검증돼야 할 부분이 과연 ‘인재 기준’에 맞춰 이뤄졌느냐, 혹 그렇지 못해서 국정 운영의 리스크가 발생할 소지가 있느냐 하는 점 아닐까. 

예를 들어 최근 이준석 대표와 정진석 의원이 SNS를 통해 벌이는 설전에 그런 기우가 잘 나타나 있다. 이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두고 정진석 의원이 우려를 표시했고, 이 대표가 맞받아치는 설전의 핵심은 ‘누가, 누구와’ 싸우는가가 아니다. 집권당 대표가 현재의 우크라이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 방문했는지, 그것이 국정 운영의 메시지에 어떤 걸 담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이것이 현 정부의 향후 외교정책에 어떤 함의를 갖는가도 중요하고. 찬성이니 반대는 그 다음의 문제다. 

인재 기용의 핵심은 그 시대의 상황에 따른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이다. 치세에는 치세형 능신이 있고, 난세에는 이를 극복할 영웅이 있어야 하는 건 불문가지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영웅이 필요할지 능신이 필요할지 그것부터 잘 헤아려 주길 바라는 건 바로 ‘유재시거(唯才是擧)’의 본뜻을 곱씹어 봐야 한다는 기대 때문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200만 원, 이런 공약을 두고 막 출범한 윤석열 정부를 비난하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으려니와, 법률가가 많아야 법치가 이뤄진다고 하는 발언을 희화화하는 일 다 별도다. 요는 ‘누가’ 하든 그건 다음 문제이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먼저 말해야 한다. 정치적 소란이 어쩔 수 없는 이 시점에 때아닌 1천800년 전 조조를 소환하는 까닭은 제발 정신 차려 달라는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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