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강화에는 고려시대 대표적 문·무인 이규보, 허유전, 김취려의 묘가 남아 있다. 특히 김취려(1172∼1234)의 묘는 영종도에 자리한 두경승 묘와 함께 고려 무인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더구나 남한 내 남아 있는 고려 무인의 묘로는 신숭겸(춘천), 최영(고양), 윤관(파주), 강감찬(청주) 등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런 가운데 고려 왕릉 외에도 무인 김취려와 두경승의 묘가 강화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인천이 ‘고려 고도(古都)’였다는 역사적 역할과 그 흔적을 전해 주는 근거다.

김취려(金就礪)는 본관이 언양(彦陽)으로 아버지는 예부시랑을 지낸 부(富)이다. 시호는 위열(威烈)이다. 음서로 정위(正衛)가 돼 동궁위(東宮衛)에 배속됐으며, 이후 장군이 돼 동북계를 맡아 지켰고 대장군에 발탁됐다. 1216년(고종 3) 거란의 일부가 몽골군에 쫓겨 압록강을 건너 고려의 북방지역으로 밀려왔을 때 연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쳤다. 다음 해 거란군 5천여 명이 제천까지 내려오자 전군병마사로 임명돼 거란군을 명주 쪽으로 패주시켰고, 1218년 거란이 재차 침입하자 병마사가 돼 강동성으로 쫓아냈으며 몽골군·동진국과 힘을 합쳐 강동성을 함락시켰다. 거란군과 여진족을 물리친 공적으로 1221년 추밀원사병부상서판삼사사(樞密院使兵部尙書判三司事)가 됐으며 참지정사·판호부사, 그리고 1228년 판병부사를 거쳐 시중에 제수됐고 고종의 묘정에 배향됐다. 

김취려의 묘는 양도면 하일리 진강산 서쪽 정제두 묘역으로 가기 바로 오른쪽에 묘석이 보이고, 여기에서 약 1㎞ 다시 들어가면 묘역이 있다. 묘역의 석물은 모두 새로 조성된 것으로 상석·망주석·신도비 등이 있다. 최우 무인정권이 1232년(고종 19)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함에 따라 김취려도 강도(江都)로 이주해 문하시중에 올랐다. 1234년(고종 21) 5월 21일 강도에서 63세로 사망했으며, 7월 12일 진강현 대곡동 서쪽 기슭에 장례 지냈다. 이후 오랫동안 유택(幽宅)이 실전(失傳)됐다. 1909년 묘지석이 발견된 곳에서 후손들이 향화(香火)를 이어오다가 1983년 강화군과 언양김씨 종친회에서 묘소를 새롭게 정비하고 원형의 봉분 앞에 망주석 한 쌍과 상석을 갖췄으며 그간의 경위를 새긴 비석을 건립했다.

한편,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 산15에도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위열공 김취려의 묘’가 자리한다. 언양읍에 위치한 그의 묘에는 대리석 제단, 석등, 새 문무신상이 있다. 묘비는 1670년(현종 11) 후손인 김려와 언양현감이 세웠다고 알려졌다. 묘지명에 장지(葬地)를 진강산(鎭江山) 대곡동(大谷洞)으로 기록하고 있다. 두 곳 모두 언양김씨 종친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고려사」 김취려전에는 "키가 6척 5촌이나 되는 체격에 수염이 길어 배를 지났으므로 예복을 입을 때마다 반드시 여종 2명에게 수염을 좌우로 갈라 들게 한 다음 띠를 매곤 하였다"라 해 외모와 체격이 출중했음을 전하고 있다. 또 활 쏘는 재주가 묘한 지경에 달해 벽력의 소리와 같고, 전술은 번개같이 빨랐다고 한다. 무엇보다 책임감과 죽음을 두려워 않는 용기, 담대함이 있고 아랫사람에 관대한 상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고려사」와 13세기 묘지명 자료 및 14세기 이제현이 작성한 「김공행군기」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전자는 거란을 물리치고 몽골과 화약을 맺은 ‘여몽형제맹약’에서 김취려의 활약이나 역사적 평가보다는 당시의 사정을 언급하는 정도였는데 이것은 몽골에 대한 경계 내지 새로운 영웅의 출현에 대한 최씨 무인정권의 경계심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후자는 거란을 물리치기 위해 맺은 ‘형제맹약’에서의 김취려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는 100년이 지난 시점이었기에 객관적 평가가 가능했던 것으로, 이후 조선시대에 김취려에 대한 평가는 신라의 김유신에 짝하는 고려의 가장 대표적인 무장(武將)으로 거론된다. 

13세기 동아시아의 정세 변화 속에 인천의 역사적 역할이 있었음을 강화도에 남아 있는 고려 무인의 흔적을 통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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