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주 변호사
박노주 변호사

정치 철학자 존 롤스는 정치 논쟁에 있어 공적 이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논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정치인이나 국민이 진보와 보수로 양분돼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논리를 사용하고 있다. 서로 같은 집단 내부에서만 말이 통한다. 공적 이성이 마비된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이러한 현상이 증폭됐다. 다른 집단과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불편한 대화를 피하는 것이다. 이러한 증세가 치료되려면 남북 통일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타고난 불완전성과 욕심 때문이기는 하지만 정치인들이 이를 부추겨 더욱 심화됐다.

정치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한 사람들이 우리 국민의 대표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진다. 이를 치유하려면 대화의 방식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화 방식으로 인해 더욱 사태가 악화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진리나 진실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영구불변의 진리나 진실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차선책으로 대화를 통한 이해와 타협이 필요하다. 진리나 진실에 의해서만 행동해야 한다면 이 세상은 정체되고 말 것이다. 진리나 진실이 아니어도 오늘 우리는 국가를 운영하고 인생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다수가 진리나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지침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

대화를 통한 의견 접근이나 타협이 객관적 진리나 진실에 그나마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평화나 안정을 위해 도움이 된다. 자신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에 대해 타인을 탓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대방에게 좋은 내용이라 생각돼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으면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이를 소화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사람의 귀에 쏟아 넣으면 역효과만 날 뿐이다.

대화는 자신의 의견이 틀리고 상대방의 의견이 옳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다. 타인의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수없이 되뇌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타인과 대화할 때 자신과 다른 생각을 걸러내고 이에 반대할 논거만 찾는다면 대화의 의미가 없다. 자신의 생각과 동일한 말은 오히려 들을 가치가 없다. 자신과 다른 생각들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이유를 숙고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발전이 있는 것이다.

대화는 정신적 교류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 대화에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말을 존중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이라도 경청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진정한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의사를 충분히 이해한 다음 자신의 의견을 밝혀야 한다. 상대방의 의사를 충분히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 고집한다면 자신이 만든 허상과 논쟁하는 것과 같다. 상대방의 의견과 자신이 만든 허상은 동일하지 않은 것이다.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의견을 가능하면 간단명료하게 밝혀야 한다. 말이 길어진다면 자신의 의견에 대해 자기 자신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그 의견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대화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이심전심으로 은근한 정이 흐르고, 이를 통해 의사가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대화할 때는 마침 오늘이 그 사람의 생일인 것처럼 밝고 명랑하게 대하자. 그러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해결될 것이다.

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주의 깊게 경청하는 일이다. 상대방의 말을 억측하며 대응하는 것은 가장 문제가 있는 대화법이다. 이런 방향으로 대화가 진행될 때는 즉시 대화를 중단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분쟁으로 이어지고 대화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토론이나 소송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아무리 지루하더라도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 상대방의 의사를 명확히 확인한 후 자신의 의사를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패배하거나 패소를 하게 된다. 

흥분할 만한 상황은 그동안 갈고 닦은 인격과 철학의 시험대라 할 수 있다. 흥분하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과 상대방의 정신에 큰 상처를 주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따금 흥분해 화를 내고는 곧 후회하곤 한다.

철학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려면 상당한 구도기간과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말을 하고도 후회가 적은 경우는,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듣고 생각을 깊게 하면서 침착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하는 경우다. 타인의 말에 동의할 수 없을 경우에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방식으로 말을 하면 진리나 진실 추구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공격적이고 투쟁적인 대화를 고집하는 것은 인격이나 철학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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