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미국의 대법관이자 산악인이었던 윌리엄 오 더글러스는 "인간이 인간과 투쟁할 때는 질투, 시기, 증오 같은 것을 배우게 되지만, 산과 투쟁할 때 인간은 자신보다 거대한 존재 앞에서 고개 숙일 줄 알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겸허, 평온, 품위 같은 것을 배우게 된다"고 했다. 어찌 보면 인생은 등산과 같다. 하루하루를 산에 오르는 것처럼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정상에 올라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등산이 인생과 비유되는 이유는 먼저, 반드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다는 것이다. 많이 오르면 그만큼 내려가야 하고, 많이 내려가면 그만큼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산행을 하다 험한 오르막길을 만나도 불평할 일은 아니다. 급경사 길은 완만한 길보다 빨리 올라가고, 오르면 언젠가는 내리막이 나오기 때문이다. 오르고 내리면서 아름다운 산의 풍경을 볼 수 있듯이, 인생도 가파른 오르막과 편한 내리막이 있어서 살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다면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다음은, 등산이나 인생은 반드시 동반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는 공존과 상생의 중요성을 강조한 코사족의 속담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산악인 엄홍길도 "제가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목표를 끝까지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귀한 동료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특히 바위를 오르내릴 때 동료들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인생도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등산과 인생은 그 과정이 많이 닮았다. 산에 오르기 위해 모인 네 사람이 있었다. 네 사람 모두 정상에 도착했지만 그 과정은 달랐다. 첫 번째 사람은 산에 오르기 위해 값비싼 등산화를 마련했는데, 등산화가 발에 잘 맞지 않아 계속 투덜거리며 산에 올랐다. 두 번째 사람은 산 중턱에서 경치를 바라보다 숲으로 둘러싸인 농장과 언덕 위의 집을 보더니 그것은 가격이 얼마나 될지 쓸데없는 생각에 오랜 시간을 보냈다. 세 번째 사람은 작은 구름만 봐도 비가 쏟아져 혹시라도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올라갔다. 네 번째 사람은 산에 오르며 나무와 풀, 바위와 계곡을 보며 감탄했고 자연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정상에 올랐다.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인생의 등산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산행하는 사람들은 정상에 빨리 오르려고 급히 서두르곤 한다. 하지만 산행의 즐거움은 과정에 있다. 산을 오르내리는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길 옆에 핀 꽃을 보거나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기쁨을 느껴야 한다. 오로지 정상만 목표로 삼고 산을 오르면 산행의 재미는 반감되게 마련이다. 빨리 정상에 오르려고 걸음의 속도를 높이다 보면 길 옆의 꽃들과 눈을 맞출 수 없고, 계곡물의 속삭임을 들을 수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느끼려면 삶의 전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산의 정상이 성공이라면 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이 행복이다.

인생은 산행과 같이 다양한 상황이 전개되며, 이러한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적응해 가는 과정이다. 산을 누가 대신 올라 줄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흘린 땀만큼 보람을 느끼며 저마다의 노력과 책임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등산이 대자연에 순응하는 것처럼 인생도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해야 한다.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산을 오르는 사람과 여유롭게 산에서 내려가는 사람이 서로 마주칠 때처럼 인생도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입장을 바꿔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산 길의 여유에 앞서 등산길의 땀방울이 있었듯이 성공 이전에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정상의 기쁨을 향한 등산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삶에 이정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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