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근대 개항기 조선에 진출하려는 서양 세력의 끈질긴 시도와 이를 저지하려는 조선의 해금책(海禁策)은 끝내 인천 해안에서 군사적 충돌을 일으켰다. 특히 일본 군함 운요호에 의해 영종방어영이 함락당한 이후에는 인천 연안을 방어할 군사력이 전무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인들이 한양으로의 접근이 강화수로보다 훨씬 수월하고 거리도 짧았던 인천, 부평로를 알게 됨에 따라 연안 방비에 대한 조선의 근심은 배가됐다. 일본과 개항을 합의했다고는 하지만 조선은 조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싶지 않았고, 또 일본이 합의를 무시하고 무력시위를 도발할 경우를 대비해야만 했다.

1878년 8월 정부는 인천부의 방위력 강화를 위해 인천과 부평 연안에 진(鎭)과 포대를 설치키로 결의했다. 최소한 인천을 일본의 개항지로 허용하지 않고, 또 그들의 압박을 저지하기 위한 방비시설을 보강하기 위함이었다. 우선적으로 제물포 남쪽과 북쪽의 포대부터 공사가 시작됐고, 포대 축조는 비용보다 견고함을 위주로 해 석질이 좋고 단단하다고 알려진 강화도의 석재를 채취해 사용했다. 1879년 7월 1일 두 진의 공사가 완료됨에 따라 신설된 인천의 진은 화도진(花島鎭)으로, 부평은 연희진(連喜鎭)으로 명명했다.

인천 연안의 포대는 서울로 무단 진입하려는 적선(賊船)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설치했기 때문에 공격의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곶(串)’에 축조했다. 곶은 해안에서 육지가 바다 쪽으로 돌출돼 있는 지역으로, 포대는 적선의 눈에 띄지 않는 해안 돌출부의 ‘저지대’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적선이 아군의 위치를 알아채지 못하게 한 연후 적선의 접근을 기다리고 있다가 불시의 기습공격을 통해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해안 돌출부의 ‘정상’에 위치해 조망권을 확보하고 경보(警報)와 척후의 의미를 갖고 있는 돈대(墩臺)와는 달리, 진(鎭)과 가까운 거리에 설치해 유사시 포대 병력이 쉽게 투입될 수 있게 했기에 병력이 상주할 필요가 없었다.  

화도진 소속의 포대는 묘도북변포대(5혈), 묘도남변포대(5혈), 북성곶북변포대(3혈), 북성곶남변포대(5혈), 제물포북변포대(8혈), 제물포남변포대(5혈), 호구포대(2혈), 장도포대(3혈) 등이었다. 또한 적의 상륙이 예상되는 해안에는 자그마한 언덕인 토둔(土屯)을 쌓았고, 묘도 인근에 파수직소(把守直所)와 응봉산(현 자유공원) 정상에 지휘소인 요망대(료望臺)를 뒀다. 제물포 포대와 북성곶 포대, 묘도 포대는 화도진과 가까운 거리에서 상호 밀집 방어를 수행토록 했고, 월미도와 제물포 사이의 좁은 수로와 북항으로 향하는 주안갯골 수로를 차단하는 첫 번째 임무를 맡았다. 그러므로 이 지역을 통과하는 적선들에 대해 집중포화가 이뤄져야 했는데, 이것이 실패하면 다음으로 부평의 연희진 소속 포대들이 2차 방어를 하게끔 배치됐다. 

호구·장도포대가 위치한 지역은 인천 남쪽 연안으로,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승기천과 동방천 연변이다. 동방천 초입의 소래포구는 현재도 소규모 어선의 포구와 어시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호구포대는 외암도와 남동산단을 거쳐 선학동까지 이르는 승기갯골을 방어하고, 장도포대는 소래를 거쳐 시흥시 포동까지 흘러드는 소래갯골을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이 포대들은 각기 대완구포 2개와 3개의 비교적 적은 소규모 화력으로 구성했는데, 유사시 화도진과 연희진을 벗어나 우회하는 적선을 차단하기 위한 보조 방어물로 기능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다른 포대에 비해 포대 간 거리가 떨어져 있고, 독자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포대들은 인천이 개항지로 확정됨에 따라 무용지물이 됐다. 개항장을 중심으로 밀집돼 있던 포대들은 일제강점기의 매립과 도시개발로 인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그나마 비교적 멀리 떨어져 한적한 곳에 있던 호구포대와 장도포대는 근래에 재현해 논현포대는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6호, 장도포대는 인천광역시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했다. 인천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그 가치에 변함이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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