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바다열차 전경.
월미바다열차 전경.

월미도는 각계각층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월미도는 항만과 관련한 각종 공장과 갑문, 시설물들이 자리잡은 곳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신기한 볼거리가 된다.

청년들에게 월미도는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다. 월미테마파크는 국내에서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월미도 바이킹’, 사회자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유명세를 얻은 ‘디스코팡팡’ 등으로 명성이 높다. 거리를 따라 늘어선 카페나 식당의 루프톱은 오션뷰 명소로 손꼽힌다.

인천에서 청춘을 보낸 중장년층에게 월미도는 젊은 시절의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1974년 경인전철이 개통하면서 인천역에 맞닿은 월미도는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즐기는 일명 ‘아베크족(avec族·남녀 한 쌍을 의미하는 옛말)’의 필수 코스였다. 월미도 바로 옆에 있는 개항장과 차이나타운까지 돌아보면 잊고 있던 추억이 저절로 소환된다.

인천을 상징하는 명승 중 한 곳인 월미도는 월미바다열차를 통해 다시 한번 명소로 거듭났다. 월미바다열차는 인천역을 출발해 월미도를 한 바퀴 돌아 6.1㎞ 구간을 운행하는 모노레일 무인열차다. 원래 2009년 개통 예정이었지만 안전문제로 무기한 미뤄졌다가 10년 만에 정식 개통돼 2019년 운행을 시작했다.

평균 차량속도가 시속 14.4㎞여서 열차를 타고 30여 분간 느긋하게 월미도 풍경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열차 왼쪽으로는 울창한 숲으로 덮인 공원, 오른쪽으로는 노을이 내리는 인천앞바다, 육지와 연결하는 육계도와 인천 근대화의 역사를 한눈에 본다는 점이 월미바다열차의 최대 매력이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땅거미가 내려앉는 오후 7시가 넘어서 그날 마지막으로 운행하는 월미바다열차에 탑승했다. 월미바다역에서 출발해 월미공원역, 월미문화의거리역, 박물관역을 지나 다시 월미바다역으로 돌아오는 노선이다.

월미바다역에서 월미공원역으로 가는 길에는 사일로 벽화를 아주 가까이에서 올려다보게 된다. 사일로는 1979년 건립된 곡물저장고로 항구와 산업의 중심축이었던 인천항을 상징한다. 높이가 48m나 되는 건물 외벽에 예술가 22명이 벽화를 그려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벽화로 2018년 12월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월미바다역과 월미공원역 사이에 그려진 사일로 벽화.
월미바다역과 월미공원역 사이에 그려진 사일로 벽화.

벽화는 원통형 기둥이 차곡차곡 포개진 사일로의 특색 있는 모양을 살리고자 어린 소년이 책 안으로 들어갔다가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열차는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꼼꼼하기 살피도록 사일로 앞 구간 동안 시속 9㎞로 저속 주행한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곡물창고를 바쁘게 오가는 대형 트럭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일로벽화를 지나면 바로 월미공원역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월미문화의거리역까지 가는 길에는 그동안 다소 방문할 기회가 없었던 인천내항의 풍경을 느껴봄 직하다. 열차 노선 양옆으로 철재와 목재가 적재된 창고들이 즐비하다.

이곳에는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만들어진 자동차들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중고차들이 인천항 제6부두에서 배에 실려 해외로 수출된다. 시선이 닿는 곳 끝까지 자동차가 즐비한 광경에 어린 탑승객들이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골목 곳곳에는 항만노동자들이 이용하는 숙소나 여인숙, 옛 가게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월미문화의거리역에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바다가 보이면서 월미도가 섬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높이 8m, 건물 약 3층 높이인 레일에서 넘실거리는 바다가 바로 내려다보인다. 바다 수평선 끝에는 해가 넘어가는 노을과 영종국제도시, 인천대교의 불빛이 보인다. 월미도 쪽으로는 관람차와 음악분수, 야외무대가 있고 바닷바람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고 나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가 있는 팔미도와 최장 인천대교의 장관을 좀 더 가까이서 관람 가능하다. 회와 조개칼국수 등을 파는 음식점들도 많다. 승권을 소지하면 1회 무료 재탑승이 가능하기 때문에 저녁식사를 하러 이 역에서 내리는 승객들이 많다. 

박물관역을 지나고나서부터는 갑문이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갑문은 밀물과 썰물의 조석간만의 차가 큰 항구에 선박을 안전하게 통과시키려고 바닷물의 수위를 조절하는 장치다.

특히 인천항 갑문은 인천 개항의 상징으로서 교과서에 소개되기도 했다. 운이 좋아 배 한 척이 갑문으로 들어오는 순간과 겹치게 되면 교과서에서 읽은 갑문의 원리를 눈으로 확인 가능하다.

왼쪽으로는 월미산과 월미공원, 월미전망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때 인천상륙작전의 격전지였던 월미산은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반세기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었다. 그 사이 야생 생태계가 울창하게 조성됐으며, 2001년 인천시민의 품으로 들어와 월미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월미산의 사계절을 보려고 분기별로 월미바다열차를 탑승하는 주민도 있다. 

이후 인천 최초의 관광호텔인 올림포스호텔, 인천 노동 역사가 깃든 동일방직, 인천상상플랫폼 등을 지나 차창 밖으로 차이나타운이 보이면 월미바다열차의 여정은 끝이 난다.

월미바다열차가 이처럼 월미도의 명물이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월미바다열차의 전신인 ‘월미은하레일’ 사업은 2008년 2월 기본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월미관광특구와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추진됐다. 그러나 준공 후 2010년 시험운행 도중 안내륜 축이 절단되는 등 부실 사고가 발생해 사업은 전면 중단됐다. 당시 투입된 사업비는 853억 원이었다. 

열차가 운행하지도 못하는데 레일이 월미도 바다 전경을 해쳐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철거에도 수백억 원의 비용이 필요한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약 없이 개통은 미뤄졌다. 이후 레일바이크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흐지부지되면서 10년 동안 흉물로 방치됐다.

마침내 2018년 시와 인천교통공사는 월미은하열차를 개통하려고 팔을 걷어붙였다. 기존의 교각을 최대한 재활용하면서 주행 레일 양쪽에 보조레일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안전성 문제를 해결한 뒤 2019년 10년 만에 개통했다.

월미바다열차에서 보는 인천대교.
월미바다열차에서 보는 인천대교.

안전문제로 개통이 좌절됐던 지난 10년의 교훈을 살려 열차 안전기준을 도시철도 수준으로 맞췄다. 자동운행 시스템을 컨트롤하는 관제실에서 급속브레이크 작동을 통제하고, 열차 내부에는 상주 직원을 1명씩 둔다. 전 구간에 대피로를 설치했으며, 2m/s 이상 강풍이 불거나 진도 4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열차는 자동 정지한다. 

개통 이후 2022년 4월까지 총 24만6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열차를 이용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다소 주춤하기도 했지만 2019년 10월 개통 이후 두 달 동안 9만2천983명이 이용할 정도로 흥행몰이에 대성공했다.

월미은하열차의 흥행으로 개항장과 차이나타운, 동화마을 등 인근 지역까지 덩달아 방문객이 몰렸다. 월미바다열차 개통 전에 비해 인천역 하차 인원은 평일 21.5%, 휴일 29% 증가했다. 

시는 월미바다열차를 하나의 관광 브랜드로 안착시키려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상 중이다.

복합문화공간인 인천항 8부두 상상플랫폼과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이 개관하면 월미바다열차는 이를 아우르는 관광축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리라는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김유리 기자 kyr@kihoilbo.co.kr

사진=<인천교통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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