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원장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원장

엑스레이로 세계적인 명화를 재해석한 작품 60여 점을 선보인 ‘자비에 루케지:THE UNSEEN’전에서 프랑스 작가 자비에 루케지는 의학 진단용, 공업용으로 주로 사용되는 X-선 사진기를 명화에 비춰 그 속에 숨겨진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공하고 있었다. 많은 작가들이 엑스레이 작업을 선보이고 있었지만 본질적인 접근보다는 X선의 기술만 강조한 데 반해 루케지는 세기의 명작을 엑스레이로 찍어 작품 해석의 새로운 시각을 보여 줬다.

 루케지는 수년간의 사진 작업에서 카메라 기기에 얽매여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과감히 기존 카메라와 완전 결별을 선언한다. 예술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을 위해 이미지 표현 방법을 완전히 바꿔 엑스레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루케지는 이후 세계적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소장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빈센트 반 고흐, 귀스타브 쿠르베, 에두아르 마네, 파블로 피카소 등 근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해 X선 촬영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해 이를 스토리로 풀어냈다. 

 대표적으로 사실주의 작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상처 입은 남자’를 꼽을 수 있는데, 가슴에 상흔을 입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남자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실제 남자 표정은 고통스럽기는커녕 오히려 평온해 보이기까지 한다. 원래 작품은 쿠르베가 사랑했던 여인을 왼쪽 가슴에 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었다. 한 번 그린 그림을 수정하지 않기로 유명한 쿠르베는 연인과 헤어지고 품에 안고 있던 연인 대신 가슴에 피를 흘리는 상처로 수정한 것이다. ESG가 금융투자 실무와 이론에서 고찰되고 명분을 찾아왔다면 투자 개념에서 바로 이러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가 극명할 수도 있다. 화폐와 가치, 통계와 확률, 회기 분석과 수치해석은 계량 분석의 기본으로 공부해야 하고 거시경제 기초에서부터 경기변동론까지 소비와 투자, 이자율을 통해 경제의 근간을 이해하며 경기 변동과 성장론에 대한 보이는 정리가 필요하다. 

 기업금융의 경우 현금 흐름 분석에서 현재 가치와 미래 가치, 재무구조, 효율적 분산 투자, 무위험 자산까지 안고 가야 한다. 모두 계량화된 보이는 자산이다. 

 ESG가 대두되면서 그 화두는 ‘보이지 않는 가치’가 단연 돋보이게 됐다. 기후환경, 사회적 가치, 정도경영에서 보이는 것은 시정이 즉시적으로 가능하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반면 보이지 않는 것은 후유증, 부작용을 야기해도 고치거나 제자리로 돌려놓기가 쉽지 않다.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금융업은 그래서 절차주의, 보수주의, 형식주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서는 안 된다. 직무윤리를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윤리강령’과 ‘기준’으로 정리해 봐야 한다. 

 강령은 ▶신의성실 의무 ▶전문지식배양 의무 ▶공정성 유지 의무 ▶법규준수 의무 등이 있다. 윤리기준에는 고객과 자본시장에 대한 직무윤리 준수 의무가 있다. 은행과 기업이 ESG를 가지고 기준을 합리적 거래관계를 만들어 가는 그 단초가 투자라고 봤을 때 얼마 전 10세 아이의 죽음을 함께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코인)의 위험성은 얼마든지 예견할 수 있었다. ‘일단 돈부터 벌어 놓고 보자’라는 코인에 대한 일방적 애정은 블록체인의 탐욕적 도구일 뿐 그 자체로는 보다 나은 세상에 전혀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각자의 경제활동이 타인을 이롭게 하는 보이지 않는 정도에 따라 경제적 보상의 사이즈가 결정된다. 그래서 어떤 사회적 역학 시스템보다도 정의롭고 공정해야 한다. 세계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3조 달러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로 돈을 버는 것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윤리의식 없는 IT 개발과 머니게임은 누군가에게는 파탄이요 재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진지한 성찰과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코인이 가진 내재 가치는 블록체인이라는 생태계가 든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의 최대 화두는 탈(脫)중앙화(decentralized finance)이며, 이는 정부나 금융회사의 개입 없이 블록체인 기술만으로 금융 거래가 가능토록 한 생태계이다. ESG와 금융산업, 더 나아가 보다 나은 세상으로의 발전 주역은 보이지 않는 윤리의식과 정의로운 자본시장 생태계의 신뢰감 회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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