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어민 북송 사건으로 고발된 전직 국정원장들의 수사에 착수했다. 박지원 전 원장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피살된 사건’의 첩보 관련 보고서를 무단 삭제한 혐의다. 당시 SI(군 특수정보)를 취급한 군과 현장을 관리한 해양경찰청의 책임 부분도 감사원 감사 후 검찰로 이첩될 가능성이 크다. 서훈 전 원장은 ‘2019년 11월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 선원을 북한으로 추방한 사건’에 대해 강제로 관련 조사를 조기 종료시킨 혐의다.

예상대로 정치권은 격하게 충돌하고 있다. 여당은 문재인 정권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진실을 은폐했다고 날을 세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공을 들이는 상황에서 남북 간 긴장을 높일 두 사건의 진실을 감췄다는 것이다. 야당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며 반발한다. 각종 논란으로 곤혹스러워진 현 정권을 비호하고, 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정국을 전환하기 위함 아니냐는 것이다. 어쨌든 공은 검찰로 넘어갔고, 진실은 조만간 드러날 테다. 차분히 기다리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 

이와 별도로 참담하지만 낱낱이 들춰내야 할 불편한 진실이 있다. 두 사건은 본질적으로 같다.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고, 국가의 역할을 소홀히 했으며, 전략적 의미도 찾기 어려운 참사다. 피해자 모두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권변호사 출신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정권에서 발생한 일이기에 충격이 더 크다. 게다가 우리는 탈북어민을 인권 탄압이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며 갖다 바쳤는데, 북은 우리 공무원을 사살하고 불태워 버렸다.

누구든 관련 정보를 삭제한 게 사실이라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히 처벌해야 한다. 더불어 국민 인권이 처참하게 유린되도록 방치한 책임자들의 허물도 발본색원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외면하고 국가의 역할을 방기한 건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중대범죄이기 때문이다. 어느 진영이 집권하든 달라져선 안 될 고정불변의 가치가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중략)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정신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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