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현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윤인현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정치권에서 여야 대립의 골이 깊거나 혹은 같은 당끼리 논쟁이 있을 경우 상대를 향해 중용을 지켜야 한다거나 지킬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때 우리가 생각하는 ‘중용(中庸)’은 막연히 ‘중간’, ‘중립’ 정도의 ‘그저 적당한 것’을 의미하는 말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동양적 사상에서 중용(中庸)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사서(四書)의 하나인 「중용(中庸)」에서 유래했다. 「중용(中庸)」은 「예기(禮記)」의 49편 중 31편으로, 송나라 때 주자(朱子)가 성리학을 집대성하면서 사서(四書)의 하나로 명명(命名)됐다.

「중용」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녀야 할 태도를 밝힌 책으로, ‘남이 보거나 보지 않거나 조심하고 삼가며 남들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하면서 항시 자신의 언행에 대해서 조심하고 삼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중용의 ‘중(中)’은 도리에 꼭 들어맞게 감정의 대명사인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행할 수 있게 마음속에 준비돼 있는 상태를 이르고, ‘용(庸)’은 중의 자세를 택한 것을 항구불변하게 유지해 나가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중용은 ‘언제나 도리에 딱 들어맞게 행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자(孔子) 같은 성인(聖人)께서도 행하기 어려운 도로 여겼지만, 자기 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중용의 도라고도 했다. 부귀에 처하면 관대하고 빈천하면 가난한 처지에 맞게 행하고, 오랑캐 땅에 가면 오랑캐의 법도를 존중하고 환난을 당하면 환난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곧 남의 문화를 존중하고 상(喪)을 당하면 음주가무를 하지 않는 태도가 중용의 도인 것이다. 이렇듯 중용의 도는 어려운 듯하면서도 선남선녀(善男善女)면 누구나 행할 수 있는 도이기도 하다.

중용을 의미하는 또 다른 말로는 저울추처럼 융통성 있게 행하는 ‘권도(權道)’와 일을 처리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때그때마다 옳은 길이 되도록 하는 ‘시중(時中)’이 있다. 「맹자」 ‘이루’장 상에 순우곤이 맹자에게 "남녀가 물건을 직접 주고받지 않는 것이 예입니까?"라고 물으니 "예이다"라고 대답하자, 순우곤이 "형수께서 물에 빠졌을 때 손으로 구원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라고 또 여쭈니 "예이면서 권도(權道)"라고 했다. 「맹자」 ‘공손추’장 상에 "공자는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셨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처럼 그때그때마다 최선책을 찾는 것은 시중(時中)이다. 

「맹자」의 예처럼 어떤 규칙이나 법제도에 얽매어 최선책의 방법을 찾지 않는 것도 중용의 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남녀의 예절을 구분 짓기는 하되, 물에 빠진 형수를 구하기 위해서는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할 것 같으면 언제라도 물러설 줄 아는 것이 중용의 도였던 것이다. 따라서 열 번 잘하다가도 한 번 그르친다거나 어제는 잘하다가도 오늘은 잘못 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이 도리에 맞는 가장 올바른 길 곧 중을 택하는 자세를 항구불변하게 유지해 나간다는 뜻을 지닌 말로, 언제나 도에 들어맞는 최선책을 택해 어제오늘의 행위가 내일을 위해서도 가장 올바른 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용이면서 권도이고 시중인 것이다.

「중용」에 중용의 도를 실천하고자 한 군자의 삶의 태도를 살핀 공자의 말씀이 있다. "射(사)가 有似乎君子(유사호군자)하니 失諸正鵠(실저정곡)이오도 反求諸其身(반구저기신)이니라." 곧 "활쏘기가 군자와 같은 점이 있으니, 정곡(과녁의 정중앙)에서 벗어나고도 돌이켜 제 몸에서 잘잘못의 탓을 구하느니라"로 해석된다. 군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뜻대로 안 되면 자기 정성이 부족함을 되돌아보고 도리에 벗어난 경우가 없는지를 반성해야 된다는 말이다.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에 맞지 않는다고 화살을 탓을 수 없듯이, 남을 원망하고 사회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요행수나 바라지 않았는지 아니면 내가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았는지 등에 대해서 성찰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남과 세상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세도 중용의 도일 것이다. 이런 중용의 도를 중간적인 것 또는 그저 적당한 것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따라서 중용의 도인 융통성을 발휘할 줄 아는 권도(權道)가 발휘될 때 우리 사회도 융통성 있게 소통이 돼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전 국민이 지켜보기에 지도자의 화법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남을 탓하는 듯한 대비의 화법은 올바르지 않다. 이전 정권과의 대비가 아니라 시중(時中)을 고려해 그 상황에 가장 알맞은 답변이 나오면 좋을 것이다. 중용의 도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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